'샴 쌍둥이'라는 명칭은 1811년 5월 태어난 창과 엥의 출생지인 '시암(Siam · 지금의 태국)'으로부터 비롯됐다. 몸이 붙어있다는 이유로 늘 붙어서 살아야 했던 그들은 여러 차례 분리수술을 요구했으나 모든 의사들은 위험하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결국 그들은 각자 다른 가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다른 삶을 가질 기회를 잃은 채 죽음조차도 같은 운명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최근 비자니 자매의 죽음은 이 창과 엥이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한 비상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변호사와 기자라는 각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머리 분리 수술을 받길 원했다. 물론 죽음이 그들의 꿈을 한순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보다도 삶을 택했다. 죽음 앞에 한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이 결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지만 사람이 생명을 부지하는 것보다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최근 CNN이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1%가 "위험에도 불구하고 분리 수술을 해야 했다"고 대답한 내용은 사람이 그러한 사실을 증명해준다.
 
하지만 이렇게 대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서 비자니 자매와는 달리 자신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내세우지 못한다. 남을 따라가기에 급급해 추종하는 유행, 그리고 정형화된 외모를 위한 수술들은 우리가 자신이 남과 다른 점을 사랑하지 못하는 증거이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과, 각자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위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산다.

그러나 그들은 '개인'이 되기 위해 목숨조차 내놓았다. 그들이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 결단이 폄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유롭게 거닐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비자니 자매는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얼마 전 또 한 쌍의 샴 쌍둥이인 민사랑, 지혜 양이 분리 수술을 받았다. 생후 4개월 된 어린 아이들이 개인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보다 따스한 눈길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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