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초(神保町) ‘고서점 거리’는 일본에서도 명물로 꼽힌다. 100여 년 전, 메이지 대학을 비롯한 명문 사학들이 부근에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고서적을 취급했다. 2차 세계대전의 폭격 속에서도 고서점 거리만은 온전히 남아 지금껏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진보초역을 나와 바라본 고서점 거리는 고색창연하리란 기대와 달리 도쿄의 여느 도심지와 다를 바 없이 현대화된 모습이다. 카페와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연이은 서점이 없다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거리다.

▲ 진보초 책방거리. (사진 | 손유정 기자 fluff@)
역 부근에 위치한 ‘대운당서점(大雲堂書店)’ 서점에 들어서자 비로소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서가에 정돈된 색바랜 도서들이 서점의 나이를 가늠케 했다. 손님들은 자리에 선 채로 손에 쥔 책을 찬찬히 훑어본다.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의 책을 훑어보는 나카이(남․66세) 씨는 도쿄가 아닌 지방에서 왔다. “도쿄로 출장 올 때면 이 서점에 자주 들려요. 히구치 이치요를 포함해 이제는 절판돼 다른데서 구하기 힘든 책들이 많거든요”
서점 주인 다이운도(남․73) 씨는 3대째 서점을 운영 중이다. 그는 손님이 원하는 책을 찾아줬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어렵게 구한 책을 손님이 받아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습니다. 정말 가치 있는 책을 입수하면 개인적으로도 큰 기쁨이죠”

손님들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택구서점(澤口書店)’에 들어서자 한 구석에서 세 명의 대학생이 책을 둘러보고 있었다. 와세다대에서 건축학을 전공 중이라는 한 학생은 건축학 관련 서적을 찾다가 우연히 이곳을 알게 됐다고 한다. “평소에도 전공 관련 서적을 많이 읽는 편인데 여기에는 처음 보는 책들이 많아요”

취급하는 고서도 서점마다 각양각색이다. 근대문학, 학술지, 서화부터 만화, 음악, 영화 잡지까지 나름의 특색을 갖고 있다. 신전고서(神田古書) 센터의 2층에 위치한 ‘중야서점(中野書店)’은 만화책과 근대문화 서적을 다룬다. 입구에 들어서자 국내에도 익숙한 만화책들이 서가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주인 카미히가시(남․43세) 씨는 특히 외국 관광객들이 방문해 만화책을 많이 구매한다고 말했다. “한국인도 많이 와요. 얼마 전에 한 분은 ‘짱구’ 시리즈를 대량으로 사갔어요”

중야서점 내에서 가장 비싼 책은 일본 근대 문학의 거인으로 꼽히는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초판본이다. 가격이 315만 엔(한화=4300만 원)에 이른다. 책마다 얇은 한지 재질의 포장재로 햇빛으로 종이가 훼손되지 않게 보관하고 있다. 책은 메이지 시대인 1905년에 출판됐다. 그러고 보면 진보초 고서점 거리와 역사를 같이한 셈이다.

손님이 떠나자 주인은 조심스럽게 책을 갈무리한다. 솔로 먼지를 털어내는 그들의 손길에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진보초의 유구한 역사는 결국 책을 사랑하는 손님과 주인이 써낸 살아있는 고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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