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방학 동안 고대신문은 2월 12일부터 나흘간의 일본취재를 기획했다. 국제팀장의 자리를 맡게 되면서 두 명의 팀원과 일본취재 일정을 짜게 됐다. 개인적으로 일본은 전혀 가까운 나라가 아니었다. 간단한 인사말은커녕 간단한 히라가나조차 몰랐다. 시작부터 캄캄했다. 일단 도쿄 여행 책자를 닥치는 대로 빌리고 거의 매일 국제팀원들과 토의를 했다. 전체적인 취재 틀은 잡혀갔는데 스스로는 뭔가 아쉬웠다. 일본에 가는데 <상실의 시대>의 무라카미 하루키도 보고, <고민하는 힘>의 강상중 교수도 만나야 하지 않을까하는 정말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의 사심 가득한 희망사항은 문제가 아니었다. 겨울방학 동안 일본은 아직 1월 지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됐다. 일본 여행에 대한 불안감으로 기자 2명이 합류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취재를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게 느껴질 만큼 언론에 비친 일본에서는 사건사고가 계속됐다.(일본에 가서는 더할 나위 없는 평화로움을 느꼈지만) 어쨌든 취재 계획은 다섯 개의 주제로 팀이 나뉘어 수행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나는 그중에서 도쿄대 탐방 팀에 속해 도쿄대의 유학생 세 명을 만났다. 인터뷰 약속시간보다 2시간 정도 먼저 가 도쿄대를 둘러봤는데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교수로 보이는 여성이 모피 코트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었다. 학생들이 자전거를 많이 탄다는 것은 그렇다 치고, 모피 코트의 여인과 자전거의 모습은 무척 생경했다. 우리나라에 자전거 문화가 확산된다 해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는 교수가 몇이나 될까.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는 교수님 한 분이 번뜩 떠오르긴 했지만 그분은 일본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분이셨다.

상상을 뒤로하고 인터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지진과 방사능에 대한 불안을 안고 학업을 이어나가는 유학생들의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 학생은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느냐는 물음에 “아직 공부를 끝마치지 않아 다 마치고 돌아가고 싶다”라고 답했다. 21살의 학부생으로서 이제 막 전공 공부를 시작한 나로서는 어마어마한 대답이었다. 불시에 찾아오는 퀴즈 때문에 마음 졸이고 중간고사 준비로 헉헉대는 나의 미래에 그런 ‘어마어마함’이 존재할지 의문이 들었다. 프랑스로의 교환학생을 꿈꾸기는 하지만 생명을 담보로 할 만큼의 간절한 무언가가 나에게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일본의 열악한 상황은 오히려 그녀의 열정과 의지를 시험해볼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열정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고, 평생에 자신을 시험해볼 기회를 얻은 것도 어쩌면 행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두 달이 흘렀다. 평소 보고 싶었던 미술작품도 두루 보았던 여행이었지만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그 언니의 말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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