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반 학생회 집행부를 하고 있는 친구를 보면 학생들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궁금해한다. 대학생은 바쁘다. 청년 취업난을 뚫기 위해 학점, 영어성적, 인턴, 해외연수, 봉사활동 등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학생회 집행부로 활동하는 학생들에겐 단순한 스펙쌓기보다 과를 하나로 묶고 학생자치를 실현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일이다. 고대신문에서 △2011년 2학기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거쳐 2012년 1학기 새롭게 학생회를 꾸린 문과대학 싸이코반 학생회 △12년째 학생회가 이어지고 있는 문과대학 한국사대동반 학생회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학생회가 출범한 약학대학 약학과 학생회의 집행부를 만났다. 공감면은 인터뷰를 토대로 1인칭시점으로 재구성하였다. 학생회 집행부를 하는 학생이면 작은 것 하나에 동감하고, 일반 학생이라면 집행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다시 한 번 일어서도록문과대학 싸이코반 학생회 조상아(심리학 11)회장, 최하영(심리학 10) 교양국장, 원석현(심리학 11) 기획국원, 김진솔(심리학 11) 지원국장, 정휘담(심리학 12) 재정국원2011년 2학기, 갑작스러운 회장의 부재가 우리 반 전체를 뒤흔들었고 급하게 비대위가 열렸다. 당시 신입생이었던 11학번이 비대위원장이 돼 위태위태한 상태로 간신히 한 학기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그 시기 우리 반은 문과대학 전체 회의에서 표결권을 받을 수조차 없었다. 우리 반 학생들의 목소리를 단과대학 회의에서도, 총학생회의에서도 말할 수 없었기에 반 구성원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나니 학생회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그리고 2012년 학생회의 재구성을 결심했고, 흐트러졌던 체계를 다시 잡아가고 있다. 여러 학생회가 집행부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지만 이번 학생회는 많은 학생이 관심을 가져 수월하게 집행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하지만 단순히 집행부원의 원활한 모집이 수월한 집행부 활동까지 보장해주진 못했다. 어느 날 한 집행부 친구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친한 친구를 따라 집행부 활동을 시작하긴 했지만 스스로가 왜 집행부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 이야기가 퍼져나가자 반 전체의 분위기가 크게 흔들려 한동안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분명 학생회가 비대위 체제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분업화가 되어있지만 집행부 일은 많이 고되다. 또 행사를 준비하는 회의에서 사소한 의견 충돌이 언쟁으로 커지고, 감정싸움으로 번져 집행부 전체가 힘들었다. 그만큼 목적의식이 없으면 하기 벅찬 일이기에 다들 분명한 목적의식과 스스로 선택해서 집행부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새로운 학생회가 출범한 뒤 처음 했던 행사인 새내기 배움터(새터)를 조금 서툴렀지만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새터 물품을 정리하는 동안 별 탈 없이 새터를 마쳤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고 피곤이 몰려왔다. 집에 돌아와 자려고 누워 핸드폰을 확인하니 문자가 몇 통 와있었다. “즐거웠어. 준비하느라 고생했어” 짧은 이 한 줄의 문자에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함께하는 공간을 위하여
문과대학 한국사대동반 학생회 이명희(사회 10) 회장, 집행부원 송혜영(한국사 11), 이행묵(한국사 11), 민경현(한국사 11), 김종섭(철학 11)

처음 학생회에 참여하게 된 건 ‘사람이 좋아서’였다. 새내기 시절에는 마냥 선배가 좋았고, 그 사람들이 있는 과반이란 공간이 좋았다. 새내기 때의 추억들은 모두 반에서 선배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그저 추억으로 끝내버리기엔 아쉬워 후배에게도 전해주자 싶어 2학년에 학생회 집행부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집행부 활동은 새내기 때 생각했던 것처럼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집행부 활동에 할애해야 하는 1년이란 시간과 노력에 대한 부담이 만만찮았던 것이다. 학생회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과반 내의 사람들과 두루두루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은 제법 궂은 일이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말실수를 할까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고,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며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에 더해 우리 반은 삶에 대한 정치적인 고민을 하고 여성주의 기조를 갖고 있는 공간인 만큼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에서 사람들과 부딪힐 때도 많았다. 반의 정치적인 입장에 동의하지 않아 반을 떠난 사람도 있었고, 꼭 반에서 그런 무거운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소통이 최우선인 학생회에서 단순히 생각과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반의 구성원을 배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럴수록 더 많은 논의와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공부해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새내기 때는 단순히 받아들이는 입장에 그쳤다면 이제는 전달해야 하는 입장인 만큼 반의 정치적인 입장이나 기조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학생회란 공간에 남아있다. 누군가는 내게 ‘시간을 버린다’거나 ‘스펙도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학생회란 공간에서 내가 배우고, 견뎌내고, 얻은 그 모든 일과 시간, 사람의 무게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말이다. 새내기 시절 선배 뒤를 보고 달리다가 문득 뒤돌았을 때 이제는 내 뒷모습을 보며 쫓아오는 후배들을 봤던 그 순간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다.


모든 것이 새로웠다
약학대학 약학과 학생회 이준우(약학 11) 회장, 안주섭(약학 11) 학번대표, 최현석(약학 11) 교육국장, 박혜원(약학 11) 부회장

약대의 특성상 우리 11학번 약학대 1기의 평균 나이는 24.5세다. 나는 그 중 가장 막내지만 학생회장을 맡고 있다. 신설된 학과이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만들어야 했다. FM부터 학과 회칙까지 나와 동기들의 손에서 탄생한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FM을 만드는데 학생회끼리 정하지 않고 우리 과 전체에서 공모전을 했다. 회칙은 신경쓸 부분이 많아서 아직도 정하는 중이다. 처음 시작하는 부분이 많아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막내가 학생회장을 맡고 있다고 동기 형, 누나들이 많이 도와주고 더 모범을 보여준다. 겉으로 내색은 잘 안하지만, 항상 고맙다. 많은 힘이 되는데 쑥쓰러워서 표현하진 못하겠다. 사실 형, 누나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 학생회장은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회의 중인 약학과 학생회. (사진 | 장선화 기자)

우리 약대는 1기, 2기를 다 합쳐도 60여명이다. 정말 소수인원으로 운영되는 과다 보니 과 사람들 한명 한명의 의견이 다 소중하다. 그래서 우리 학생회가 처음에 잡은 목표도 ‘소통하는 약학과’다. 나름 열심히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 노력하곤 있지만 잘 소통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이따금씩 약학과 맏형인 주섭이 형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주섭이 형은 나와 1기 동기지만 학생회장인 나보다 더 약학과를 많이 생각하는 분이다. 사실, 우리 집행부 사람들 모두가 약대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이런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우리 과에서 학생회장을 맡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형, 누나들이 항상 내게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작은 과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 하나가 다 중요하다는 거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 둘씩 모이면 우리 모두의 목소리가 되고 결국 약학대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니까.

올해 처음 후배를 받게 되면서 신경을 많이 썼다. 약학대는 새터를 따로 갔는데 후배를 맞이하는 첫 선배로써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다행스럽게도 큰 사건사고 없이 즐거운 새터를 다녀왔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보람차고 뿌듯했는데, 집에 오는 길에 핸드폰으로 문자랑 카톡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모두 새터 재밌었다고, 수고했다는 메시지였다. 별거 아닌 짧은 그 말에 순간 뭔가 울컥하는 게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내가 지금도 학생회를 하고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이번 주말도 행사 준비로 바쁠 것이다. 그래도 행복하다. 누가 뭐래도 학생회는 내게 너무나 매력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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