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한다. 그렇기에 나와 그저 먼 세상 이야기로 생각한다. 이해하는 것을 떠나 그들에 대해 왜곡된 정보를 접하는 경우가 있고, 이는 편견이나 혐오감 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고대신문이 본교에 재학 중인 성소수자, 레즈비언과 게이를 만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사는 인터뷰와 기고문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제가 여성을 좋아하는 여자라는 것을 처음 인지한 시점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목사님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제 모든 가치관은 성경에 기반을 뒀습니다. 그랬기에 감정을 인지할 때마다 친구감정이라고 치부했고 무시했습니다. 오히려 여느 보통사람처럼 동성애를 혐오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면서 제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무언가 잘못된 것이기에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동성애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치유해야한다’는 설교 말씀을 들을 때면 비참해 이를 악물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학 진학 후 정체성 혼란이 심해졌습니다. 평생 제 절대적 진리였던 성경과 교회를 등졌습니다. 창조주가 절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과도 자연히 멀어졌습니다. 저를 설득하던 언니에게 “언닌 평생 날 몰라, 나에 대해 뭘 아는 척 하지마”라며 소리치곤 했습니다. 우울증이 심해졌고 이렇게 살 바엔 세상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알게 됐습니다. 각기 다른 환경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성을 좋아한다는 하나의 이유로 묶여 공감하고 소통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혐오감이 들거나 혼란이 있을 법했는데, 안도감이 들더군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 세상엔 많고 혼자가 아니란 생각에. 그 때야 제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세상이 여러 세상으로 나뉘어졌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았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다른 구성원들이 살아가고 있더군요. 시각이 달라지고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감춰진 세상에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생각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옮겨졌습니다. 장애인,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동성애자 등 절대적 수가 적은 사람들을 소수자로 대하지만, 모든 사람이 소수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자라난 환경을 똑같이 겪지 않는 이상 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으니까요.

‘정답은 아니지만 오답도 아니잖아요’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전까진 정답과 오답으로 나누어 생각하던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정체성을 비롯해 세상 많은 부분들이 이 둘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젠 남들과 다른 경험, 다른 색깔을 바탕으로 빛을 내며 살아가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저를 이 세상에 보낸 것엔 뜻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동성을 좋아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힘이 듭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려면 사람을 ‘구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은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고민을 공유하고 연애상대를 만납니다. 주변에선 서로를 알아보기 힘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속성상 인연이 금방 끊기기 마련이고 이에 가벼워질 수 있는 점도 분명 있습니다. 또한 결혼이라는 제도가 허락되지 않아 늘 연애에 그쳐야한다는 점도 괴롭습니다. 사회적 시선과 두려움 등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사람들을 간혹 보면, 제 미래가 되진 않을지 무섭습니다.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떠날까 무섭습니다.

동성애를 둘러싼 편견들은 무척 많습니다. 정신적 질환으로 취급하고, 이유 없는 혐오의 눈길을 보내기도 합니다. 또한 퇴폐문화에 젖어있다고 생각하거나 그저 ‘힘든’ 사람이라고 짐작하기도 합니다. 때론 모든 동성을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하거나 희화화의 소재로 삼습니다. 하지만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보통사람들과 똑같습니다. 이성애자를 일반화시켜 생각할 수 없듯이 동성애자들도 다양한 부류의 삶으로 다시 나누어집니다. 저와 달리 정체성 혼란도 편하게 받아들인 사람도 많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동성애라는 특수성과 동성애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 속에서도 여전히 동성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 이라는 감정은 제어나 선택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모습 역시 버리고 싶어도 버려버릴 수 없는 제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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