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젠 상관 안 해. 정리하는 거 힘들어 못해먹겠으니까. 가보자…갈 때까지…”

이성애자가 일상에서 동성애를 가장 쉽게 접하는 경로는 미디어를 통해서다. 성소수자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박지훈(미디어학부) 교수와 이진(언론학과 대학원) 씨에게 미디어 속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디어 속 동성애의 변화
이진 |
동성애를 가장 먼저 다룬 미디어는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1990년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성소수자 동아리 학생들이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벌였고 이는 ‘추적 60분’과 같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방송됐다. 이 때 방송의 초점은 ‘그들은 왜 동성애자가 되는가, 동성애자는 어떻게 치료해야하는가’였다. 혹은 에이즈와 연관시켜 동성애자의 성생활은 문란하다고 지적했으며 청소년 교육에 장애물이 된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2000년도 당시 인기 방송인 홍석천의 커밍아웃과 트렌스젠더 하리수의 인간극장 출연 등 실제 성소수자가 대중 앞에 등장하면서 사회 기류가 점차 변화했다. 동시에 이들을 바라보는 미디어의 시선도 조금씩 바뀌었다. 과거 성생활이 문란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던 동성애자는 동정의 대상이 됐다. 또한 시청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방송사 단막극 프로그램에선 동성애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다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인공이 자살을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등 대부분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됐다.
2005년 주류 영화계에서는 처음으로 동성애를 다뤘던 영화 ‘왕의 남자’가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동성애 코드를 사용한 드라마와 영화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의 동성애 코드는 주로 유사 동성애였다. 시장에서 통하는 ‘동성애’라는 소재를 이용하면서도 사실은 동성애가 아닌 이성애라는 식으로 내용을 구성해 동성애 반대론자들과의 직접적인 담론은 피한 것이다. 유사 동성애를 다룬 드라마는 ‘커피프린스 1호점’, ‘성균관 스캔들’ 등이 있다. 2010년이 돼서야 공중파 주말 드라마 최초로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동성애를 주요 소재로 다뤘다. 가정에서라도 동성애자를 사랑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것을 주제로 한 이 드라마는,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접근은 시도하지 못했지만 분명 획기적인 시도였다. 물론 드라마 방영 후 동성애 조장을 이유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일간지에 광고를 게재하는 등 사회적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미디어와 현실의 간극
박 교수 |
동성애는 이제 미디어에서 하나의 상업 아이콘으로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동성애자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정형화돼 있다는 한계가 있다. 게이는 잘생기고 옷을 잘 입고 섬세하다는 식으로 그려지거나 혹은 아예 동성애자를 희화화하는 것이다. 또한 동성애자의 캐릭터들은 동성애자라는 측면에서만 규정한다는 한계점을 가진다. 실제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들과 같이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만큼 이는 동성애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드라마, 영화에서 동성애자 캐릭터의 비중이나 성격이 차츰 변화했던 것과 달리 시사프로그램에서는 특별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과거와 기획 주제도 거의 바뀌지 않았으며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이는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동성애자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지만, 사회적인 인정 측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한 인식변화
이진 |
동성애자를 호모라고 비하하던 시절을 지나 주말 드라마의 한 등장인물로 동성애자가 등장하게 된 배경 속엔 변화된 대중의 의식이 담겨있다. ‘동성애자가 내 옆에도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여기엔 미디어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매체를 통해 사람들 입에서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회자되다 보면 사회에 남아있는 부정적인 인식이 변화할 거라 생각한다.

박 교수 | 현재 동성애라는 키워드는 다양한 이유로 미디어에서 점차 많이 등장하고 있다. 첫째는 동성애가 흥미로운 주제고 오해의 소지를 만들어 극을 흥미롭게 이끌어나갈 수 있는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PD 역시 드라마는 동성애가 아니라 오해를 다룬 드라마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드라마 시청자들인 20~40대 여성들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남성 동성애자는 잘생기고 세련된 사람이라는, 또한 게이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판타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내용들은 이성애자들이 갖고 있는 편견이 배경인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점차 다양한 콘텐츠가 나오게 된다면 언젠가 이런 편견을 깨나갈 하나의 주요 창구로 미디어가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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