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사티를 전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는 반아카데미즘과 어린이입니다. 어릴 적부터 에릭 사티는 교회 오르가니스트에게서 피아노와 그레고리안 성가를 배웠습니다. 12살이 된 에릭 사티는 더 높은 수준의 음악 교육을 받기 위해 파리 음악원(Conservatoire)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에릭 사티는 전통과 권위를 중시하는 아카데미즘에 반감을 느끼고, 원내 획일화된 교육을 거부하면서 결국 파리 음악원을 중퇴합니다. 중퇴한 이후 에릭 사티는 안데르센 동화책을 탐독하기 시작합니다.
에릭 사티는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키며 살아갑니다. 파리 음악원에서 배운 작곡 규칙뿐만 아니라 세상의 온갖 규범과 예의범절은 그에게 있어서 거부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에릭 사티의 삶은 자신 스스로를 불안과 회의, 정신적인 고독감으로 밀어붙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더욱더 순수해집니다. 1910년 독립음악협회에서 에릭 사티는 ‘사티의 밤’을 개최하면서 ‘관료적인 소나티네’, ‘바싹 마른 태아’, ‘개를 위한 엉성한 진짜 전주곡’을 발표했습니다. 색다른 제목을 지녔지만 모두 순수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피아노곡입니다.
세상의 온갖 규범에도 반기를 든 에릭 사티는 심지어 악기가 아닌 타자기나 사이렌, 비행기 프로펠러, 폭음 등으로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그 결과 사티는 1917년에 발레 음악 ‘파라드’를 발표했고, 이는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사티의 성격이 그대로 녹아 있는 그의 작품들은 드뷔시와 라벨을 비롯한 프랑스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작곡가 뒤레, 오네게르, 미요, 타이페르, 뿔랑, 오리크로 대표되는 프랑스 6인조는 사티를 자신들의 정신적 지주로 삼았습니다. 다음 세대인 데조르미에르, 소게, 자콥은 ‘아르쾨유 악파’를 창설하여 사티의 악풍을 이어나갔습니다.
신재웅(법과대 법학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