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연합(EU)의 출범 이후 지역 공동체 형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동아시아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지역 공동체는 지리적인 범위 설정을 기본 요소로 하여 설정된 지역 내 국가와 지역 외 국가를 구분함으로서 형성된다. 더불어 공유되고 있는 경제․정치적 정체성과 심리․문화적인 정체성 또한 갖춰야 한다. 냉전 체제의 종식 이후 한․중․일 삼국에서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 논의는 무엇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동아시아라는 용어가 등장했으며 국가 간 단절이 극심했던 전근대를 시작점으로 역사 속에서 살펴봤다.

‘동아시아’ 생성 당시 정체성은 무엇이 규정했는가
처음 동아시아를 말한 것은 19세기 제국주의 유럽의 세계관이다. 동아시아, 즉 동양의 정체성은 유럽의 거울로서 규정됐다. 이후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했던 일본의 지식인에 의해 ‘동양’이란 용어가 고안됐다.

역사적 맥락으로 볼 때, 전근대 동아시아 지역은 하나의 문화적․지역적 정체성을 가진 중국과 그 주변 지역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모든 동아시아 지역을 같은 범위로 묶을 수 있는 공통된 정체성이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전근대의 동아시아에 ‘중화사상(中華思想)’이라고 일컬어지는 세계관이 관철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전근대에 동아시아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많은 주변 국가들이 ‘화이질서(華夷秩序)’에 편입돼 있거나 편입하고자 했으며 그들이 조공 제도를 통해 묶여 있었다. 부핑(步平)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소장은 “그것이 비록 완전히 배타성을 띠거나 평등하고 단일한 지역 공동체인 동아시아를 상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과 주변 국가들에게 공동체 의식의 단초를 제공했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문화권’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한자와 유교, 물아일체의 자연관, 개인보다 우선되는 공동체 윤리, 불교 등이 서양과 구분되는 요소로 간주되지만, 이것이 모든 동아시아 국가나 민족 사이에 공유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 대한 유기적인 이해와 사고방식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전근대 동아시아 질서의 해체
동아시아를 지배하고 있던 화이질서가 붕괴된 것은 제국주의로 무장한 19세기 서양열강이 아시아에 침입했을 때다. 중국은 서양 국가들에게 침탈당했고,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하면서 자국 중심의 ‘대동아 질서’를 형성하려고 했다. 그 뒤,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미․소 대립구도가 형성되자 동아시아는 이념의 전쟁터로 변모했다. 국가 간의 대립과 단절 속에서 공동체적 의미의 동아시아는 해체됐다.
이후 냉전 체제가 붕괴되면서 한국에서 ‘동아시아’ 혹은 ‘동아시아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탈이념적인 정치․경제적 필요를 위한 지역 공동체에 대한 자각이 이뤄진 것이다.

동양이 주체인 동아시아로
‘동아시아’의 첫 등장이 서양의 관점에서였고 동아시아 근대사가 서양의 언어로 정체성을 만들어내려고 한 강박적 모방의 역사와 다름이 없었다. 지금 동아시아 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동아시아 담론은 그 인식과 사고의 주체를 되찾고자 하는 일환이다. 특히 한․중․일 세 국가의 정치․경제적 발전의 성취가 이 같은 의식의 성장을 촉진시킨 것으로 보인다. 홍석준(목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한․중․일 삼국은 서양 국가가 아님에도 발전과 성장이라는 어휘를 실현시킴으로서 더 이상 발전과 성장이 서양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문정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역 공동체의 경제적인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동남아지역을 포함해 동아시아의 지역내 무역의존도가 이미 EU 수준에 근접해감을 볼 때, 이미 동아시아의 경제 통합이 기능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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