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 문을 연 본교 구로병원의 완화의료센터. 흔히 ‘호스피스’라는 말로 잘 알려져 있는 완화의료는,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를 치료하는 대신 고통을 경감시켜주고 편안한 임종을 준비하도록 돕는 의료 활동이다. 이곳에서는 환자의 가족, 의료진,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 죽음에 맞닿아있는 환자 곁에 함께 하고 있다.

▲ 왼쪽부터 김정희 씨, 김선동 씨, 최갑선 씨. 사진 | 김슬기 기자 kimsg@

“저희 아버지는 죽음을 그냥 이사 가는 것처럼 생각하라고 말씀하시곤 했죠”라고 말하는 최갑선(여∙57) 씨는 스무 살 때부터 다니던 성당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3년 전 서울로 이사 온 뒤로는 구로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됐다. 그녀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지독한 고통 때문에 ‘차라리 빨리 죽게 기도해 달라’는 말을 듣는 일이다.

35명의 자원봉사자 중 유일한 남성인 김선동(남∙53) 씨는 죽음을 아주 가까이서 보면서 느끼시는 게 있냐는 질문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말기암 환자들을 옆에서 보고 있지만 사실 그분들의 고통과 슬픔을 완전히 같은 눈높이에서 보지는 못해요. 과연 내가 저 상황이면 어떨까 생각하면 저부터도 두려움이 앞서죠” 그러나 오히려 그 때문에라도 김선동 씨는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본인이 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많지는 않지만 간혹 젊은 환자들을 볼 때도 있다. “20대 후반의 여자 환자가 있었는데 너무 안타까웠어요. 본인이 죽음을 감당하지 못해서 광란의 병원생활을 하다 보니 더 일찍 갔지요. 죽는 그 순간까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김정희(여∙50) 씨의 기억 속에는 비교적 편안한 임종을 맞은 환자가 있다. 50대의 남자 환자는 병에 대해 알기 전 일찍 퇴직을 한 뒤 부인과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가족들에게 자주 편지를 쓰기도 했던 그 환자는 가족의 품에서 편안한 임종을 맞았다. “그 모습을 보고 죽음이란 건 본인이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준비하는지가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지요. 특히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라면 말이에요.”

상대적으로 죽음을 생각해보기 어려운 젊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최갑선 씨는 “죽기 전에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젊고 시간이 있을 때 주변에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답했다. ‘잘 죽는다’는 것과 ‘잘 산다’는 것은 어쩌면 같은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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