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경호 문과대 교수·한문학과
여행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렇기에 여행은 인간의 사유와 감정을 다룬 모든 매체 속에 들어 있다.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도 여행을 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리 생리적이거나 본능적인 이유 이외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한다. 여행을 통해서 인간은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물질문화를 전달할 뿐 아니라, 바로 그 여행의 노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또 자기 자신을 성숙시켜 나간다. 그렇기에 인간의 내면을 성숙하게 하는 일련의 과정을 흔히 여행에 비유하거나 삶 자체를 여행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대의 여행은 흔히 여가활동으로 간주된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 외국어를 익히기 위해서, 때로는 여행을 떠나지 못한 이들에게 자랑하려고 길은 떠난다. 하지만 진정한 여행은 ‘지금 여기로부터의 떠남’이어야 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것에 몸을 내맡겨서 두려움과 호기심을 경험해야 한다. 

그렇거늘 우리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의 본질에 대해 사색하지 않는다. 더구나 여행의 순간순간 느꼈던 감동은 퇴색하고, 디지털 카메라에 담았던 빛나는 광경들은 어느 파일에 들어 있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낯선 풍경과 기이한 풍속과 처음 보는 사람이 나의 자아를 변모시키고 타자였던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자아에 의해 재해석되어 친숙하게 되는 과정을 온전하게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여행의 참 의미를 반추했다. 현재보다 훨씬 불편했을 노정에서 지금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들은 여행의 고통과 기쁨을 경험했다. 때로는 현실의 질곡을 박차고 일어났고, 때로는 역사지리의 공간을 조사하러 나섰으며, 때로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장난 때문에 떠돌아야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 현실을 뛰어넘어 무언가 장대한 이상을 꿈꾸거나, 현실의 틀을 분쇄할 만한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차서, 자기가 본래 있었던 공간으로 되돌아왔다. 마치 귀향하기 위해 그 먼 길을 돌아왔다는 듯이 안도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행은, 그것이 개인적인 것이었든 공적인 것이었든, 우연적인 것이었든 계획적인 것이었든, 그들의 내면을 변혁시킨 큰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20년 전에, 다산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려나 60세 무렵에 춘천을 두 번이나 여행한 사실을 알고는, 다산이 거쳤을 곳을 지도에서 확인하고 현지 답사를 하여 <다산과 춘천>(강원대학교출판부, 1996)이라는 책을 간행했다. 그 뒤 핵심교양 과목으로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을 개설하여 여행의 정신사에 대해 학생들과 함께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간의 강의와 연구를 토대로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고려대학교출판부, 2011)을 간행했다. 이 책에서 나는 동아시아의 기행문학을 되읽어 보면서,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삶을 구속하는 공간을 벗어나서 드넓은 세계의 공기를 들이마시려고 했던 그 자유의 의식을 반추하였다.

한국인의 여행기록으로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이제현의 <서정록>, 김시습의 <사유록>, 최부의 <표해록>, 노인(魯認)의 <금계일기>, 정시한의 <산중일기>, 홍세태의 〈유백두산기〉, 신유한의 <해유록>,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박지원의 <열하일기>, 정약용의 <천우기행>, 김금원의 <호동서락기>등을 다루었다. 중국인의 여행기록으로는 육유의 <입촉기>, 주달관의 <진랍풍토기>, 동월의 <조선부>, 원굉도의 <화숭유초>, 서홍조의 <서하객유기>, 이정원의 <사유구기>를 다루었다. 일본인의 여행기록으로는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 마쓰오 바쇼松尾芭蕉의 <오쿠노호소미치(おくのほそ道)>를 다루었다. 그리고 에도 서민의 폭소 여행기인 짓펜샤 잇쿠(十返舍一九)의 <도카이도추히자쿠리게(東海道中膝栗毛)>를 되읽으면서 일본과 한국, 중국의 여행 방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근세 이전의 지식인들은, 구도의 길에 올랐다든가 관료로서 임지로 향한 다든가 귀양길에 우연히 새로운 장소에 들른다든가 하더라도, 전설과 설화가 깃든 곳,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원혼이 울부짖는 전장, 세속과 절연된 신성한 사원을 둘러보면서, 바로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 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근세 이전의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남긴 여행 기록을 통해 그들이 세계의 관념을 어떻게 확장시켜 나왔는지 이해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여행을 풍부한 체험여행이 될 수 있도록 변화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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