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년은 입시를 준비하는 중요한 기간인 동시에 소중한 추억이 만들어지는 시기이다. 친구들과 산책하며 수다를 떤 일,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은 일, 함께 축제 공연을 만들어간 일 등의 추억은 언제나 학교가 배경이다. 나와 다른 환경의 고등학교를 다닌 학생은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떻게 공부했을까. 같은 대학에 왔지만 각자 다른 고등학생 시절을 보낸 학생들을 만나 고등학교 생활기를 들어봤다. 경기여고 출신 정소영(정경대 경제11) 씨, 분당 태원고 출신 김정현(경영대 경영11) 씨, 안양외고 출신 김병호(공과대 화공생명11) 씨, 전주시 전일고 출신 변명섭(문과대 사학11) 씨를 만났다.
강남 경기여고 출신 정소영(정경대 경제11) 씨
의지가 약해지고 성적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던 소영 씨지만 즐거움을 잃지 않았던 것은 소소한 일상들 덕분이었다. “친구들과 운동장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하고,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강남에는 성적에 민감한 학생들이 많을 것 같다는 말에 “강남이라고 해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오히려 전혀 그렇지 않아요”라고 답한다. 많은 학생들이 학원을 다니는 건 사실이지만 극성스럽게 다니는 학생들은 없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소영 씨는 혼자 공부하는 길을 택했다. 소영 씨는 스스로 계획을 세워 공부하는 경험을 통해 값진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
분당 태원고 출신 김정현(경영대 경영11) 씨
수도권 일반고가 가진 애매한 환경에 불만을 갖기도 했다. “수도권 일반고는 학구열이 높아 지방 일반고 친구들보다 내신 관리가 힘들었어요. 또 외고 학생들보단 스펙이 부족했고, 외고와 달리 여러 예체능 과목을 들어야 한다는 것도 불만이었죠”
태원고는 1학년은 ‘조기진급반’, 2학년은 ‘조기졸업반’을 운영했다. 따로 수업을 듣거나 자습을 할 수 있고 자격이 되면 조기 진급, 조기 졸업을 통해 더 효과적인 입시를 준비할 수 있었다. 주로 ‘조기반’에서 생활한 정현 씨에게 조기반 친구들은 고등학교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추억들이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조기반 친구들과 싱가포르로 여행 갔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4박 5일간 자유여행을 갔었는데 그 전엔 친구들과 그렇게 오래 자유롭게 여행을 간적이 없어 정말 재밌었죠” 정현씨에게 고등학교 생활은 한 가지에 열중하며 노력하고 소중한 추억도 만든 소중한 시기였다.
안양외고 출신 김병호(공과대 화공생명공학11)
외고에 들어가기 전 병호 씨는 학생들끼리 경쟁이 치열할 것을 걱정했다. 하지만 막상 입학해보니 학생들의 분위기는 예상과 달랐다. 학생 교류가 활발했고 자발적으로 스터디를 하는 등 ‘다 같이 잘하자’는 분위기였다. “우리 학교의 장점은 학생들이 서로 활발히 교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짝후배 시스템이 있어서 선후배간 교류도 많았고 다양한 축제나 행사를 통해 친구들끼리 더 친해질 수 있었죠. 하고 싶은 게 있고 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었어요”
많은 행사와 과외 활동이 있었지만 공부를 할 때 학생들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야자시간엔 여자든 남자든 앞머리를 묶고 공부했어요. 어느 날엔 같은 반의 한 친구가 반삭발을 하고 오기도 했죠. 정말 공부를 하다 코피를 흘리는 친구도 있었어요” 학습 분위기도 좋고 서로 협력하며 공부하는 것도 좋았지만 외고의 단점은 외고라는 것이었다. “공부할 때 가장 힘든 과목이 중국어였어요. 외고가 글로벌 인재를 양성한다 해도 우리는 국내 대학을 가야하는 모순이 있었죠. 수업에서 중국어 시수가 굉장히 많았는데 제가 이과라 입시엔 도움도 안 되는데다가 내신관리가 힘들었죠. 고3땐 문과, 이과 할 것 없이 부담을 느꼈어요”
병호 씨는 지금도 한 달에 서너 번은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난다. 함께했던 추억을 나누다보면 병호 씨의 고등학교 생활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전주 전일고 출신 변명섭(문과대 사학11)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명섭 씨였지만, 수업종이 치고 교실로 돌아오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돌변했다. 주변에서 친구들이 아무리 말을 걸어도 묵묵히 수업만 들었다. “그 때 그렇게까지 스스로 엄격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에 가끔 후회가 되기도 해요. 좀 더 여유를 가졌어도 좋았을 거예요”
명섭 씨의 학교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 우호적인 분위기였다. 선생님이 학생을 성적순으로 차별하는 것이 어느 정도 용인됐다. 야간 자율학습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별도로 특별반으로 배정돼 나머지 학생들과 다른 곳에서 공부를 했다. 자습 분위기는 당연히 좋았다. “같은 행동을 해도 성적에 따라 선생님들이 다르게 처우를 해서, 친구들과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덜 혼난 적도 있었어요. 그럴 때면 친구들에게 참 미안했죠”
소소한 일에도 즐거워하던 명섭 씨의 고등학교 생활은 이제 끝이 났지만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면 여전히 추억에 잠기곤 한다. 그 때의 모습은 명섭 씨에게 지금까지도 소중한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