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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idable] 히말라야 등반기
[Formidable] 히말라야 등반기
  • 고대신문
  • 승인 2012.06.1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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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본 듯한 임자체의 아름다운 빛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지만, 정작 방학 끝에는 아쉬움만 남는다. 그런데 만약 히말라야를 등반한 방학이라면? 그 방학을 평생 잊을 수 있을까. 지난 겨울방학 고대산악회 오종훈(정경대 경제05) 씨는 ‘20대에 히말라야를 직접 보고 싶다’는 꿈을 이뤘다.

▲ 남체 예비일날, 에베레스트가 잘 보이는 뷰포인트로 오르는 가벼운 훈련산행. 사진제공 | 고대산악회

1. 떠나기전
1학년 때 시작한 산악부 생활을 정리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회에 나갈 준비와 함께 YB에서 한 걸음 물러난다는 의미다. 그런데 2011년 마지막 학기를 다니면서 그 해 취업을 목표로 두던 와중에 변수가 생겼다. 산악부에서 히말라야를 간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OB 트레킹에 대한 내용이겠거니 생각했고, 곧 흐지부지 되겠지 생각하였다. 하지만 훈련계획은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면서 구체적이고 확정적으로 진행되었고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 대학생활에 미련은 없었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내가 많은 경험을 했음을 느꼈고, 내가 원하는 전공을 택하여 학과 공부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를 계속 뒤돌아보게 하는 것은 히말라야였다. 졸업하기 전에 히말라야를 경험할 수 있는 산행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영채 형이 쓴 문구처럼 나에게도 마음 깊은 곳 20대에 히말라야를 직접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물론 좋은 직장을 구하는 일도 소홀할 수 없었다. 다시 구직활동에 매달리고 싶지 않았고 그런 욕망들 사이에서 방황했다. 

마음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어서였을까 훈련대가 확정되고 준비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나는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가고 싶던 회사의 불합격 통지를 받고 나서야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임자체로 떠나는 것이었다. 산행과 취업을 저울질하던 나에게 등반대장인 용일 형은 별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정리된 상황을 말씀드렸고 지나간 일이니 아쉬워하지 말고 산행에 집중하면 된다고 하셨다. 죄송하면서 감사했다. 기회주의적인 나에게 결국 이정표는 임자체행을 일러주었고 이렇게 나는 히말라야 등반을 결정짓게 되었다.

 

2. 남산모임
11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준비기간이 시작되었다. 행정적인 업무와 대외협력 부분은 용일 형이 담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산행과 관련된 장비, 식량, 의료 등을 맡았고 매주 함께 남산을 뛰고 팀워크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었다. 나도 09년 이후로 들어온 부원들과 산행을 함께 한 횟수가 적어 자주 보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용일 형 사무실에서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운동하고 계획을 짜던 준비기간이 실제 산행만큼 기억에 남는다.

겨울이 다가오고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달린 남산에서의 단체운동이 때로 귀찮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을 달리며 보았던 서울의 야경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나는 서울에 올라와 지내면서 학교에서 가까운 종로에서 사람들을 자주 만났고 이 지역에 대한 추억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시내의 야경이라 더 아름답게 보였다.

3. 카트만두
카트만두 공항은 마치 국내의 한 버스터미널을 연상시키는 시설이었다. 짐을 찾는 과정에서 작은 해프닝을 겪고 다들 승합차에 올랐다. 모두들 현지 스텝들이 준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연신 창밖을 구경했다. 창밖에는 생경한 풍경이 펼쳐지고 이국의 사람들이 활보했다. 소란스러웠지만 한편으로 활기차 보이는 네팔의 첫인상은 그렇게 각인되었다.

우리는 현지 업무를 대행해준 여행사 사장님의 집으로 향했다. 민박집이기도 한 그곳에서 첫날을 묵었다. 샤워를 하면 컨디션이 나빠질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모두 씻는 것을 포기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산에 들어가면 씻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므로 그 기간이 하루 더 늘어나는 것에 나는 개의치 않았다.

4. 카라반(上)
예정된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갔지만 루크라로 가는 비행기는 쉽게 출발하지 않았다. 공항 대합실에서 2시간 가까이 기다린 듯하다. 날씨가 안 좋으면 아예 비행기가 안 뜰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오던 터라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작은 경비행기에 올라탔다. 나는 한숨 자고 일어나니 루크라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다른 대원들 말로는 안전하게 착륙해서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코스 상의 여러 마을을 지나치고 설산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모든 것이 신기했다. 길게 늘어진 철다리는 아래를 보면 아찔하여 나도 모르게 걸음을 빠르게 걷곤 하였다. 햇볕은 강렬하여 눈이 부셨고 대충 바른 선크림은 살갗이 타는 것을 막는데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1~2시간을 걷다가 쉬는 것을 반복하고 하루에 한 번은 로지에 들러 따뜻한 물이나 차를 마셨다. 모든 길은 대부분 완만한 오르막이었고 땀이 나지 않는 속도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보통 8시쯤에 출발하여 5시정도까지 걷는 하루의 일정에 큰 무리는 없었다.

고도를 높이는 일정 중에 남체와 딩보체에서 하루씩 예비일을 가져 고도 적응에 여유를 두었다. 마냥 쉬는 것이 아니라 오전에 조금 더 높은 지점을 다녀와서 오후에는 휴식을 취하는 식이었다. 로지에서 쉬는 것보다 가벼운 산행을 했던 것이 컨디션 조절에 더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딩보체의 예비일에 했던 산행은 힘에 부쳤다. 단지 악으로 오르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두 발이 무거웠고 숨이 차서 호흡이 가빴다. 천천히 가고 싶었지만 정해진 시간 내 목표지점에 가야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몰아붙였다.

고산에서 속도는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였다. 내가 후배들보다 빠르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반적인 산행을 해 본 결과 나는 다경이와 페이스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내가 1학년인 부원과 속도가 비슷하다는 생각에 분발해야지 생각했지만, 내 페이스를 잘 알고 조절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너무 천천히 걸으면 정상에 설 수 없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처음부터 마지막 일정까지 일행 중 나의 위치는 항상 중간이었다. 선두 그룹에 있었던 적도 없었고 후미에서 따라 간적도 없었다. 평균적인 속도의 걸음걸이가 나에게 딱 맞는 고산에서의 움직임이었다.

5. 임자체(Imja Tse)
임자체 베이스캠프로 이동하는 길은 평탄했다. 능선을 걷다가 넓은 계곡을 따라 오르는 완만한 길이었다. 점점 고도가 높아질수록 머리는 더 지끈거리고 햇볕은 더 따가웠다. 그래도 날씨는 좋았다. 먼저 도착한 대원들은 베이스캠프에 텐트 4동을 쳤다. 텐트를 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머리가 아프고 숨이 가빴다. 캠프 정리가 마무리되었을 때쯤 모든 인원이 베이스캠프에 모였고 이제 텐트 생활의 시작이었다.

▲ 동이 트고 난 직후 임자체 정상 아래 설벽 시작지점으로 이동하는 대원들의 모습.

나는 우영이와 한 텐트를 썼다. 방한을 충분히 한다고 했지만 겨울의 히말라야는 역시 추웠다. 겨울의 설악산도 매우 춥지만 온도계 상으로 드러나는 베이스캠프의 실외온도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한 번 새벽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텐트를 나왔는데 모든 것이 얼어붙어 고요했다. 바람은 불지 않았지만 공기는 차가웠고 그 때의 밤하늘에는 달이 밝아 지금도 그 모습이 쉽게 떠오른다. 오래 기억에 남을 선명한 순간이었다.

임자체 등반은 난이도가 낮다고 하여 열심히 걸으면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내가 임자체를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보다 더 힘든 산행이었다. 등반을 시작하기 전에 오은선 대장님과 용일 형은 하이캠프를 이용하는 문제를 놓고 논의하셨다. 나도 하이캠프가 굳이 필요할까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미리 장비를 올려놓기 위해 하이캠프에 다녀와 보니 답은 명확했다. 내 페이스를 고려할 때 베이스캠프에서 출발하면 정상에 오르기 어려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나는 최대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확률을 높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이캠프에서 한 템포 쉬어 가야했다.

▲ 2012년 1월 13일 11시 경, 5명의 대원이 임자체(Island peak) 정상에 오름.

미리 언급하자면, 하이캠프는 정상에서 내려올 때도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렇게 기진맥진한 적이 처음이었다. 내 눈은 주황색 텐트를 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내려오는 와중에 몇 번을 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설선을 벗어나기 전에는 눈밭에서 앉아 졸았고 그 이후로 바위에 걸터앉아 눈을 잠시 감으면 앞서 가던 일행이 더 멀어져 있었다. 나는 하이캠프가 보이자 저기까지는 가야된다고 생각하며 졸린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텐트 앞에 도착하자 내 몸을 텐트 안으로 밀어 넣고 신발도 벗지 못한 체 잠이 들었다. 텐트 안의 온기로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신발을 벗고 다시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18시가 넘었고 어둠이 내렸다. 내 옆에는 성인이가 나와 비슷한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다시 정상에 오른 날의 첫 순간으로 돌아오면, 내 기억은 06시 지나 동이 트기 시작한 순간부터 분명해진다. 자정부터 하이캠프를 출발하여 설선에 도착해 아이젠을 신고 설사면을 올랐다. 그런데 당시 나는 그 날 밤이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설사면을 오른 기억이 난다. 지난 추억을 아름답게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는 당시 상황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밤이구나.’ 연신 되뇌며 임자체의 밤을 즐겁게 감상했다. 그리고 06시가 되어 동이 트자 현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정상아래 설원으로 이어지는 루트 상 눈이 붕괴하여 길이 끊어져 있었다. 우리는 길을 우회하여 07시 즈음에 모든 인원이 고정로프가 시작되는 지점에 모였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각이 더 서있고 표면은 눈이 아닌 얼음으로 이루어진 빙벽을 마주하였다. 당시 나는 다른 대원들, 특히 후배들을 격려하기보다 내가 정상에 가는 것에 더 혈안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위까지 오르는 루트에서 체력이 바닥 난 상태였기 때문에 모든 동작에 정신을 집중했다. 결국 11시경에 정상에 올랐다.

당시 심정은 ‘정상에 꼭 가고 싶어.’라는 순수한 열망보다 ‘정상에 무조건 간다.’는 욕심에 가까웠다. 정상에 오르고 본 경치는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바로 이어지는 하강루트에서 정신없이 내려왔다. 그리고 설원에 떨어지자 맥이 풀렸다. 그래서 아까 말한 대로 하이캠프로 복귀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나는 하이캠프를 내려오면서, 그리고 베이스캠프를 정리하고 카트만두로 오는 과정에서 정상에 다녀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정상에 올랐을 때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성취감과 안도감이 복합된 감정이 천천히 자리 잡았다. 정상에 대한 후회를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 만족감을 느꼈다.

▲ 정상에서 고정로프를 이용해 좌측의 설원까지 하산하는 대원의 모습.

6. 카라반(下)
인생이 먼 길을 걷는 것과 같다면 목표를 달성하고 마음 편히 내려가는 삶을 나도 언젠가 경험하겠지 생각하며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남체를 지나자 나를 괴롭히던 두통이 사라졌다. 머리가 맑아지는 지점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 지점과 동일했다. 한국에서 하던 산행은 종주의 개념이기 때문에 산에서 내려오는 재미를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곳 네팔에서는 올라온 길을 거슬러 내려가는 재미를 경험할 수 있었다. 신체리듬이 좋아지고 식욕도 다시 돌아왔다. 열심히 내려오니 벌써 루크라에 도착해 있었다. 다음날 아침 모두 짐을 정리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런데 그 날 안개가 너무 짙어 결국 우리의 카트만두행 비행기는 이륙하지 못했고 우리는 하루 더 루크라에 머무르게 되었다.

신기하게 걷히지 않을 것 같던 안개가 하루 자고 나니 사라져 있었다. 아침에 키친보이가 차를 주면서 ‘Weather Very Good’ 이라고 말해주어 창밖을 보니 하늘이 열려 있었다. 오늘은 비행기가 확실히 뜨겠구나. 일찌감치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하나 피면서 정말 히말라야와 작별이구나 생각했다. 경비행기가 루크라로 올 때와 달리 심하게 흔들리니 나는 멀미가 심해서 죽을 맛이었다. 내려서 둘러보니 다른 대원들도 멀미에 꽤 고생한 모습이었다.
 
▲ 현지 스태프들이 걸어준 가타를 목에 걸고 네팔을 떠나기 전 단체사진.

7. 카트만두 그리고 귀국
첫날 묵었던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카트만두의 온화한 날씨에 감탄했다. 민박집에서 우리가 원하던 찐한 샤워는 불가능했지만 미지근한 물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을 수 있었다. 정갈한 가정식 백반으로 식사를 하고 오은선 대장님과 나를 제외한 인원들은 타멜거리 관광을 떠났다. 나는 네팔을 떠나는 전날까지 배탈로 진이 빠져 있어서 움직일 여력이 없었다.

처음 도착한 순간부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지만 막상 떠나는 날이 되니 한국이 그리웠다.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히말라야의 기억들이 천천히 사라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운명의 힘으로 결국 임자체를 오르고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는 것이 감개무량했다. 인천공항의 야경은 오랜만에 보는 문명의 빛깔이었다. 우리를 위해 공항까지 나온 여러 선배들과 후배들의 환영 속에 무사히 임자체 훈련대 대원들은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8. 꿈같은 산행
내가 2012년의 시작을 히말라야와 함께 한 것은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본격적인 준비과정 중에도 나는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했었고 결국은 운명이 나를 임자체 정상으로 인도해주었다.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히말라야를 직접 보고 경험한  뒤 내가 어떻게 그 곳을 다녀왔을까 돌이켜보니 내 의지보다 운명의 힘이 강했음을 부끄럽게 고백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8명의 재학생이 엄청난 혜택을 누리며 원정을 다녀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선배님들의 관심과 조력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다. 우리의 대상지인 임자체가 등반성이 있는 곳이 아님에도 재학생들의 순수한 첫 경험에 큰 의미를 부여해 주신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이번 훈련대가 존재할 수 있었다. 내가 저학년일 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단순한 관심이 아닌 엄청난 지원이라는 것을 매번 느끼게 된다. 그래서 정상을 올라 지원에 대한 성과를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을 계속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장기산행은 꿈같은 산행으로 남는다. 산악부 경험이 쌓일수록 산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는 현실감각은 더 뚜렷해진다. 힘들고 서운하고 안타까운 기억들은 빠르게 사라져간다. 대신 대원들과 어울렸던 여러 밤들, 정상에 오른 뒤 느낀 성취감, 여러 봉우리들을 감상하며 하산하는 길의 편안함, 그리고 네팔을 떠날 때의 엷은 아쉬움 등 이런 밝은 기억들은 사진과 함께 내 가슴 속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마지막은 항상 그렇듯 감사함으로 끝을 맺어야겠다. 임자체 훈련대의 두 기둥으로서 오은선 대장님과 88학번 박용일 형님께 감사드린다.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모든 대원들이 두 분께 느끼는 감정은 동일할 것이라고 본다. 두 분과 함께 했던 20일 동안의 산행에서 후배들은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임자체 훈련대는 내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곱씹을 좋은 추억거리이면서 동시에 어려운 순간들을 이겨내도록 도와줄 자부심으로 남을 것이다.

오종훈(정경대 경제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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