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채연 문과대 교수·심리학과
당차게 시작했던 새로운 밀레니엄이, 그저 어느 해나 다름없는 2001년으로 바뀌어가던 어느 겨울. 나는 미국 대학원으로 유학 지원을 해 두고, 초조하게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지원서를 보낸 많은 학교들 중 한 곳만이라도 나를 불러주었으면……’ 하던 당시의 심정은 곧 입학을 허가해 준 몇 개 학교들 중 한 곳을 선택해야만 하는 더 난감한 상황으로 변해있었다. 버리기엔 아깝고, 다 가질 수도 없는 학교들을 부여잡고, 새벽녘마다 바다 건너온 이메일들을 초조하게 뒤적거리면서 보내던 혼란의 날들은 얼마간 계속되었다.

고민의 끝에서. 나는 Vanderbilt 대학교라는, 놓지 못하고 있던 학교들 중 가장 낯선 이름의 학교를 골라들었다. 결정에는 개인적인 이유도 한 몫 했지만 - 당시 나는 신혼이었고, Vanderbilt는 우리 부부 둘을 동시에 받아 준 유일한 학교였다는 –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다. 입학 허가와 최종 결정 사이의 시간 동안, Vanderbilt에서는 날마다 뭔가 따뜻한 소식이 전해져 왔다. 미래의 지도교수는 나 자신 뿐 아니라 내 가족의 상황에 대해서도 지친 기색 없이 듣고 기다려주었으며, 현장에서 진행 중인 연구에 대해서 물으면 다음 날로 학과 내 모든 교수들의 최근 연구논문 복사본이 특급우편으로 배달되었다. 낯선 외국인에게 Vanderbilt 대학과 그 학교 심리학과가 얼마나 편안한 곳인지를 넌지시 알려주는 행복한 한국인 유학생들의 안부 인사며, 한국 출신 교수의 친절한 국제전화까지. 실로 나 따위가 무엇이길래 이토록 정성을 다해 데려가 주겠다고 하는지 송구스러운 마음부터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모를 자만심까지,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으며, 그렇게 나와 Vanderbilt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지극히 감정적인 선택에 따른 대책 없던 미국행. Vanderbilt 대학은, 한국인에겐 낯선 미국의 남동부 테네시주의 내쉬빌이라는 도시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치와 더불어 우리에게 이 학교를 더욱 낯설게 한 또 하나의 이유는 학교의 규모가 아닌가 싶다. Vanderbilt 대학은 잘 알려진 주립대학들과는 규모 면에서는 비교도 되지 않을, 작은 사립대학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규모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법학전문대학원과 의과대학의 명성은 미국 전역에 잘 알려져 있었다. 심리학 중에서도 뇌와 관련된 분야를 공부하는 나에게 Vanderbilt의 잘 구축된 의학 관련 시설, 설비, 그리고 뭣보다 훌륭한 전문가들은 엄청난 자산이 되었다. 재학 중에 대학에서 연구 투자를 통해서 Vanderbilt University Institute of Imaging Science (www.vuiis.vanderbilt.edu)를 설립, 뇌영상화연구를 위한 꿈의 환경이 눈 앞에 펼쳐지기도 하였다.

또한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이후엔 박사후연구원으로서 합이 여섯 해 동안 나의 둥지가 되어주었던 심리학과에 대해서도 소규모의 특화된 성격을 언급해야만 하겠다. Vanderbilt 대학에는 두 개의 심리학과가 있다. 하나는 전통의 Peabody college에 있는 심리학과 (Psychology and Human Development)로 발달, 장애, 수리 등의 분야에 전문화된 학과이며, 다른 하나는 문리과대학 (College of Art and Science)에 속한 심리학과이다. 나는 후자에 속해있었는데, 내가 공부할 때 이 학과의 총 교수 수가 20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아담한 학과는 시지각(Visual Perception)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주제에 온전히 집중되어 있었다. 심리학의 많은 전공들 중 임상, 인지, 그리고 신경과학의 세 전공 만을 추구하며, 시각과 관련된 질환부터 기초신경과학까지, 쥐부터 환자에 이르는 다양한 대상군을 바탕으로, 계산적 접근부터 신경해부학까지 다양한 방법을 적용한 시각 관련 연구가 매 순간 다채롭게 일어나고 있었다. 학과 내 모든 구성원들이 공통의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곳. 여기저기에서 늘 공동 협력 연구가 일어나고 있으며, 질문에 대해 대답하고 도와줄 사람들이 늘 곁에 있는 곳. Vanderbilt 심리학과는 나에게 그런 곳이 되어주었으며, 그 곳에서의 여섯 해 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유학생이었다.

‘Southern hospitality’라는 말이 있다. 미국 남부 지역에서 방문자들에 대한 따뜻한 응대를 뜻하는 문구이다. 내쉬빌에서는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웃으며 인사하고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첨엔 이러한 문화가 퍽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하지만 낮설고 물설었던 유학생에게 Vanderbilt의 환경과 사람들이 보여줬던 Southern hospitality는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었다. 또한 학교와 학과가 지닌 소규모의 특화된 전문성은 그곳에서 교육받는 내가 전문성을 기르고, 그것을 펼쳐나가는 데 튼튼한 밑바탕이 되었다. Vanderbilt 대학 심리학과에서 유학하는 동안, 나는 아낌없는 지원과 도움이 대책없는 유학생을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는지 체험하였다. 지금 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하면서, 혹시나 내가 제대로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내가 유학시절에 배운 것들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더 노력해야하는 많은 부분들은 원래 내가 그런 ‘대책없는’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종종, 나만의 변종 hospitality로 많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곤 한다.  

김채연 문과대 교수·심리학과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