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 ‘잉여’라는 말이 유행이다. 스스로를 경쟁에서 뒤쳐진 불필요한 존재로 느낄 때 자조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잉여의 사전적 의미는 ‘다 쓰고 난 나머지’. 몇 년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이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땐 ‘할 일 없이 빈둥대는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 ‘잉여’가 사용되는 양상을 보면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요즘의 ‘잉여’는 ‘스펙’과 대조되는 말로 많이 쓰이는 듯하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그것이 이력서에 쓸 수 없는 아르바이트라면 그 사람은 ‘알바 잉여’다. 스케줄이 있어도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활동이 아니라면 그것은 ‘잉여스러운 생활’이다. 얼마 전 ‘잉여’를 주제로 취재했던 한 대학생은 “내가 무엇
을 해야 하는지 모를 때 스스로 잉여 같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대학생들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데 ‘쓸모없음’의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건대 그 기준은 취업 준비와 상통한다. 지난달 발표된 한 취업 포털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여름방학 계획 1순위는 ‘취업 준비(79.1%)’. 자격증을 취득하겠다는 답변이 절반 이상, 어학 공부나 취업 관련 프로그램, 기업 인턴십에 참여하겠다는 대답도 각각 20%가 넘었다. 대다수가 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으니 ‘나머지’ 즉, 잉여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스펙에 도움 되는 일이 아니면 전부 ‘잉여짓’일까. 취재 중 스스로를 ‘잉여’라고 말하는 두 명의 대학생을 만났다. 한 명은 야구를 좋아한다. 그는 방학마다 전국에 있는 야구 경기장을 돌며 야구 경기를 관람한다.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를 해 어렵게 모은 용돈으로 티켓을 사고, 교통비를 아끼려고 KTX 대신 버스를 탄다. 숙박비를 아끼려고 일부러 막차를 예약해 새벽에 도착하도록 일정을 짠다. 서울에서 새벽 2시 막차를 타면 부산에 내리는 시각은 오전 6시, 새벽부터 부산 터미널을 서성이는 그는 못 말리는 ‘야구잉여’다.

다른 한 명은 종이학을 접는다. 생각할 문제가 있을 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종이학을 한 마리씩 접는다. 작은 종이학들이 모여한 박스에 가득 차면 친구들에게 선물한다고 한다. 이때 직접 쓴 손 편지도 함께 건넨다. “종이학은 더 이상 좋은 선물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남들과 비교할 땐 잘 들여다 보지 못했던 내면을 만날 수 있어 종이학 접는 게 좋다”고 말하는 그는 유별난 ‘아날로그 잉여’다.

스펙에 도움이 안 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두 명의 대학생 모두 ‘잉여짓’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삶에 당당했다. 직접 기획한 방학 생활을 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뒤처지면 돌이킬 수 없는 경쟁사회에서 속도 모르는 ‘잉여 찬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스펙 위주의 사고에 갇혀 취미 생활을 하는 것까지 ‘잉여짓’이라고 느낀다는 대학생들의 이야기가 더욱 우려스러웠다. 취미는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경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장기간의 방학, 그것은 분명 대학생만의 특권이다. 자신이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몰라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번 방학, 당당한 ‘잉여짓’은 어떨까.

김보람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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