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환희와 감동으로 이끈 ‘2012 런던올림픽’이 폐막했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13개, 종합순위 5위에 오르며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세계에 떨쳤다. 이러한 명성을 이어나갈 유소년들은 제대로 육성되고 있을까. 학창시절 운동에 몸담았던 선수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국 학원체육의 현실을 짚어봤다.

진로 결정에 있어서 ‘나’는 없다
경상북도 예천군 남부초등학교에 다니던 이모(남·18세) 씨는 당시 학교에 양궁부가 신설되면서 친구의 권유로 양궁부에 가입했다. 초등학교에서 3년 동안 양궁을 한 이 씨는 졸업을 앞두고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당시 초등학교 양궁부 감독이 이 씨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이 씨를 양궁부가 있는 예천중학교로 진학시키려 한 것이다. 초등학교까지만 양궁을 하려 했던 이 씨는 감독에게 찾아가 더 이상 양궁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감독은 이 씨의 양궁교육을 예천중학교에 위탁했다. 관행상 위탁교육을 받은 학생은 그 학교로 진학해야 했기에 이 씨는 반(半) 강제적으로 예천중학교 양궁부에 들어갔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 씨는 “내일 도장을 들고 오라”는 감독의 말에 아무 의심 없이 도장을 가져왔고 감독은 미리 작성해둔 이 씨의 고등학교 진학원서에 도장을 찍었다. 경남체고 양궁부 최철호 감독은 “운동같은 경우 어린시기에 시작해야 되기 때문에 선수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부모나 감독에 의해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며 “이는 양궁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학생으로서의 배려 없는 학원체육
우여곡절 끝에 이 씨가 진학한 체육고등학교의 교육현실은 참담했다. 이 씨는 “체고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학습 환경이 열악하다”며 “학교 측에서도 수업보다는 훈련을 중시해 수업에 결석이 잦아 학생선수는 기본적인 지식도 습득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선수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최근에 태권도를 그만 둔 방모(여·21세) 씨는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여고 태권도부에 있었다. 방 씨는 일반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과 같은 반에 편성돼 동일한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방 씨에게 일반학생들에게 맞춰진 수업을 따라가기란 힘든 일이었다. 방씨는 “훈련 때문에 수업을 자주 빠져 정규수업을 따라가기란 사실상 무리였다”며 “수업시간엔 거의 다른 책을 읽거나 잠을 잤다”고 말했다.
운동을 그만둔 선수에 대한 정책도 미흡했다. 이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왼쪽 어깨 인대파열로 양궁을 그만뒀다. 체육고등학교 특성상 운동을 그만둔 경우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이 씨는 인문계 고교로 전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 씨는 전학을 사실상 거부당했다. 체육고등학교 커리큘럼이 일반 인문계 학교와 달라 체고에서 배운 수업이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이 씨는 1학년으로 재입학하던가 아니면 검정고시를 보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이 씨는 학교를 중퇴하고 현재 고향 예천에서 검정고시를 준비 중이다. 경남교육청 관계자는 “체고학생이 인문계로 전학하기 위해선 평균 3등급 이상의 성적을 받아야 가능하다”며 “이는 체육고등학교가 특수목적 고등학교로 분류돼 인문계로 전학하려면 일정수준 이상의 학업성취도가 인정돼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역 교육청마다 관련 법규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국민공통교육과정이 적용되는 1학년 때는 체고에서 인문계로의 전학이 비교적 수월하다. 하지만 선택심화과목이 집중돼 있는 2학년부터는 인문계 학교로의 진학이 힘든 경우가 많다. 교육청 관계자는 “인문계 고교의 유명 야구부의 경우 특기자로 입학한 학생이 야구를 그만둘 경우 일반 학생신분으로 남아 공부하는 것을 불허하고 전학을 보내버린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학원체육계의 고질병, 비리문제
투명하지 못한 예산집행은 학원체육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경북체고 양궁부에 있었던 이 씨는 2011년 당시 감독의 비리사실을 목격했다. 새로 지급된 장비가 낡은 상태였던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이 씨는 이점을 수상하게 여겨 동료 선수들의 장비를 하나하나씩 조사했다. 그 결과 교체된 장비가 목록과 다른 것임을 알아챘다. 이 씨는 선배에게 이 사실을 털어 놨지만 선배는 “이걸 말하면 우리들만 더 힘들어질 뿐이다”라며 졸업하는 순간까지 비밀에 붙였다. 다행히 경북경찰청이 이 사실을 발견했고 관련자들을 사법처리 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정부와 협회에서 나온 보조금을 횡령하거나 구입한 장비를 되파는 등의 수법으로 지난 6년간 총 2억 5000여만원의 금액을 가로챘다. 학생들을 위해 쓰여야할 비용이 교직원들의 배를 불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 것이다.
이외에도 감독과 코치진이 학부모로부터 금품을 받는 경우도 있다. 본교에서도 아이스하키부 감독이었던 김광환 씨가 비리 및 횡령혐의를 받고 6월 자진 사퇴했다. 당시 피해자의 부모는 “선수부모가 감독과 코치에게 금품을 전달하는 것은 관례적인 일이다”며 “자신도 코치에게 보약값 명분으로 현금 500만원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돈없으면 운동도 못한다
일부 비인기종목에 대한 지원도 열악했다. 초등학교때부터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이모 (남·22)씨는 운동을 위해 필요한 경비 일체를 본인이 부담했다. 이씨는 아이스하키를 하면서 매달 80만원 정도의 회비를 냈다. 여기엔 링크장 대관비와 감독, 코치 선임료가 포함돼 있다. 급식비와 전지훈련비는 별도로 냈다. 이 외에 부가적으로 들어가는 돈 또한 만만치 않다. 아이스하키에 필요한 스케이트는 하나에 100만원이 넘는다. 스케이트 날을 갈고 해진부분을 수선하는 데에도 매달 10만원 가까이 든다. 이마저도 1년이상 사용하면 더 이상 쓸수 없어 새로 구입해야 한다. 선수보호장비와 스틱도 주기적으로 교체해줘야 한다. 아이스하키용 스틱의 경우 초등학교 때는 10만원 상당의 저가형 나무스틱을 사용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면 30만원 상당의 카본스틱을 사용한다. 글러브와 핼맷은 장비를 외국에서 수입해 가격이 30만원을 호가한다. 또한 선수가 부상을 당해도 치료비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씨가 10년 동안 아이스하키를 하면서 지출한 비용은 총 1억 원에 육박한다. 이씨의 어머니는 “돈없으면 애들 운동도 못시킨다”며 “학원체육의 활성화를 위해선 비인기종목에 대한 지원 또한 늘려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버려진 아이들,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이 씨는 “체고에 입학하는 학생이 100명이라면 졸업할 땐 70명밖에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가까스로 학교를 졸업해도 졸업 후 운동도, 공부도 안돼 방황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심지어 복싱이나 유도를 한 선수들 중에선 조폭으로 빠지는 애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에 진학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태권도 특기생으로 경희대에 입학한 방 씨는 현재 스포츠의학을 복수전공 중이다. 중·고교시절 학업에 집중할 수 없었던 방 씨는 대학 수업을 따라 가는게 어려워 전과를 하려 했지만 특기자로 입학한 학생들에겐 전과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유소년 양궁팀 감독을 맡았던 교육청 관계자는 “감독시절 선수들이 졸업 후 진로를 못 찾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며 “대학을 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아이들이 충분한 진로탐색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대학에 떠밀려 입학하는 현실”이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쓰다가 고장나면 버려지는 것, 대한민국 학원체육의 그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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