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 하나 없이 빼곡하게 책장으로 둘러싸인 박성규(문과대 한문학과) 교수의 연구실은 오래된 책 냄새가 은은했다. 미처 책장에 꽂지 못한 고서와 장서들이 바닥에 탑처럼 쌓여 있었다. 25년이란 오랜 시간을 이 연구실에서 보냈다. “정든 곳을 떠나니까 섭섭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니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박 교수는 고전문학, 특히 고려시대의 이규보 시 문학을 평생 연구했다. 대학원 시절, 그는  한문학 연구가 17~18세기 문학에 편향돼 있는 점이 아쉬웠다. 고려시대 한문학을 연구하기로 마음먹고 고려문학의 백미인 이규보의 작품 세계에 주목했다.

강단에 있는 동안 박성규 교수는 중학교 한문교과서를 집필하고 한자·한문 교육 진흥을 위한 글도 여러 차례 게재했다. “한자와 한문은 우리 문화의 바탕이기에 한자·한문을 모르면 국학, 동양학에 대한 근거를 상실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는 한자·한문을 죽은 문자가 아닌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강조했다. “한자는 오늘날에도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쓸 겁니다. 우리 문화를 창출하는데 가장 중요한 한자를 방치하면 우리 문화의 기반을 상실하는 셈입니다”

박 교수는 학교가 교수에게 논문 배출을 강요하는 고등교육 세태도 꼬집었다. “좋은 논문 중에는 장기간의 연구과정이 반영된 경우가 많아요. 연구만으로 1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있죠. 그런데 학교는 논문을 일년에 두 세 편씩 쓰라고 하니 가르치는 일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박 교수는 논문의 개수를 대학평가의 요소로 반영하는 실적주의적 평가방식을 지적한다. 대학평가가 학교 위상의 문제와 직결되면서 결국 교육자의 본업에 소홀해지는 현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박성규 교수는 학생들에게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당부한다. 세계 5대양 6대륙 곳곳을 여행했다는 박 교수는 여행을 통해 사람과 삶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그들의 삶을 곰곰이 살펴보는 게 진정한 공부지요. 여행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행복하게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박 교수는 퇴임 후 저술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다. 대중에게 소개되지 않은 연구분야를 쉽게 알려주고 싶다. 동양고전 속 훌륭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시대에 맞게 문장을 가다듬어 책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또한, 강연회도 열어 대중의 문화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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