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힙합씬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질적 발전보다 형태적 발전에 더 치중해왔다고 생각해도 과언은 아니다. 각종 ‘패밀리’들과 지역적 씬의 구분을 먼저 생각했고, 그들간의 설전과 ‘리얼 힙합’ 논쟁을 벌이며 자신들의 진영이 더욱 ‘진정한 힙합’의 정신에 근접해 있음을 주장했다. 힙합을 ‘전도’하는 것. 가사들은 대부분 ‘내가 진짜’ 라거나 ‘힙합의 정신이란 이런 것’에 대한 것들이었다. 미국의 힙합이 음악적 완성을 이룬 이후, 이스트코스트와 웨스트코스트의 설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국내에서는 그러한 힙합의 문화와 이디엄만이 먼저 수입된 모양이다.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고작 5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리얼 힙합’의 붐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제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패밀리 대결’이 큰 역할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힙합을 흉내내는 무리’들이 메이저 필드에서 어이없는 음악으로 설쳐대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에게 ‘높은 완성도를 지닌 힙합 음악’들과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뛰어난 완성도의 힙합 앨범 한 장이 출반되었다. 허니 패밀리 출신의 개리와 길 두명이 만들어낸 프로젝트 「리쌍」은 자칫 위험한 느낌의 어감을 지닌 밴드명에 비해 대단히 세련되고 안정되어 있는 스타일의 힙합을 들려준다. 정신없고 어지러운 샘플의 향연을 선보이면서 이것이 바로 힙합의 전형적인 텍스트라고 주장하던 메이저 필드의 아티스트들은 이들의 앨범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
‘부가킹즈’의 주장인 바비킴의 피춰링, 정말 코믹하고 ‘맛이’나는 훅으로 시작되는 2번 트랙 『출사표』는 일체의 절분음보다는 정박의 느낌을 강조한 리듬 트랙, 그리고 샘리의 절제된 기타 아르페지오가 서로 대화하는 가운데 재치 넘치는 라임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플로우를 선보인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가사. 지나치게 강인함을 강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패배주의적이지도 않은 톤으로 자신들의 앞날을 예언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국내 힙합에서 발견하기 힘든 수사와 서정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힙합 특유의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방송용으로는 당연히 부적합한 『조까라 마이싱』에서는 ‘최고의 프로듀서라 불리는 놈의 음악 속엔/빌보드 차트 1위 곡 속의 멜로디가 섞여 있어/그래도 버젓이 1등을 해/카메랄 향해 가식의 눈물을 흘리며 또 슬퍼해/이런 씹탱이들 너희 같은 짝퉁 인간들/조까라 마이싱 너의 가식적인 모습’이라는 속이 다 시원한 라인이 등장하기도 한다. 평론가가 할 수 없는 이야기, 가려운 부분을 확실하게 긁어준다.
그러나 앨범의 압권은 프로모션용 트랙인 『Rush』이다. 스타일리스틱스의 『You Are Everything』을 샘플한 메인 루프로부터 전해오는 서늘한 애수, 그리고 피춰링 보컬리스트 정인의 완벽한 ‘흑인 음색’까지 모든 것이 한국 최고의 힙합 넘버를 항해 전력질주하는 느낌이다. 인트로이자 곡의 주제부인 ‘지나간 날은 모두 뒤로/다가올 날을 향해 할로/준비된 손은 이제 위로/다가올 날을 향해 할로’는 처음으로 듣는 순간 중독되는 멜로디라인, 그리고 꾸밈없는 라이밍에 의해 엄청난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이들, 이제는 ‘전사’나 ‘전도사’ 라는 말보다는 ‘아티스트’라는 말이 진정으로 어울리는 두명의 힙합맨들에게 희망있는 날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는 덕담으로 글을 맺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