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고골 서거 160주년을 기념한 러시아연극연구회의 <코> 공연이 있었다. 사진제공 | 러시아연극연구회
대학 연극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현실이다. 매년 학내 극회가 구슬땀을 흘려가며 정기공연을 무대에 올리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무관심하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본교 2개의 중앙동아리와 5개의 연극반은 연극과 뮤지컬에 대해 알리고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연극과 뮤지컬을 사랑하는 모임’을 구성했다. 대학 연극은 분명 아마추어로서 한계를 갖는다. 그러나 연극은 사회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누구의 관점에 따라 기획과 연출이 이뤄졌는지에 따라 전하는 메시지가 조금씩 달라진다. 대학 연극은 대학생의 손에서 태어나 완성된다. 현재를 함께 살아가고 고민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누구보다 우리의 삶에 대한 진솔한 공감이 담겨있다. 9월 학내 극회의 정기공연을 맞아 그들의 활동을 되짚어본다.

“연극의 기본 정신은 ‘자유’입니다. 연극을 만들어가는 내외적인 상황이 힘들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죠” 러시아연극연구회 장재원(문과대 노문08) 씨의 말이다. 대학로에 나가야만 연극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교내에서도 충분히 연극을 즐길 수 있다. 캠퍼스의 무대는 대학로의 연극보다 더 거칠고, 더 자유롭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모든 세상은 무대, 그리고 모든 남성과 여성은 배우일 뿐”이라고 말했다. 연극은 인생과 닮아 있어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온다. 대학생에게도 멀리 있지 않다. 학교 내에만 10여 개의 연극동아리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중앙동아리 ‘극예술연구회’와 ‘소울메이트’, 단과대 동아리 ‘녹두극회’를 비롯해 △영어영문학과 연극회 △노어노문학과 연극회 △중어중문학과 연극회 △서어서문학과 연극회 등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서어서문학과 연극회의 경우 지난 10년간 활동이 없다가 올해 선배들의 후원으로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1928년에 창립돼 올해 102번째 정기공연을 앞두고 있는 극예술연구회(고대극회)는 학내 대표적인 공연 동아리로 손꼽힌다. 고대극회는 1년에 두 번 준비하는 정기공연 외에도 ‘워크샵’이라는 이름으로 추가 공연을 준비한다. 연극 한 편을 올리는 데에는 무대에 서는 시간의 수십 배가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획을 맡고 있는 유지윤(문과대 철학08) 씨는 “정기공연을 준비할 때는 방학을 통째로 반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무대 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말한다. “연극은 자기가 나오는 부분만 끝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만약 20명이 준비한다고 하면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해야 하죠”

날카롭기에 더 매력 있다
대학생 연극은 대학로보다 훨씬 더 날 것이다. 캠퍼스의 연극에는 숙련된 전문가의 손을 타지 않은 솔직함이 있다. 정제되지 않아서 더 날카롭고 예리하게 사회를 꿰뚫어 볼 수 있다. 유지윤 씨는 “비록 군사정권 시대보다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대학 연극은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강렬하게 던지고 있다”며 “기업이나 거대 기획사의 압박을 전혀 받지 않아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을 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일탈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그 속으로 끌어당기려는 시도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연극 안에 현실을 담으려는 노력은 여전하다. 장재원 씨는 “경기도지사와 소방관 해프닝을 풍자한 ‘관등성명을 대라’라는 대사가 들어가기도 했어요”라고 말한다. “사랑얘기는 너무 진부한거죠”

8월 25일, 러시아연극연구회(러연회)는 대학로에서 니콜라이 고골 서거 160주년 기념 작품 <코>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단과대 내 연극동아리지만 그 역사와 규모는 작지 않다. 러연회는 러시아 작품을 한국에 알리겠다는 취지로 1975년 설립됐다. 혼란의 역사를 겪은 러시아 문학에는 대개로 거칠고 과감한 주제의 작품이 많다. 공연엔 주로 19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았던 푸쉬킨, 체홉 등 러시아 문호의 고전 작품을 올린다. 러연회 연출을 맡은 장재원(문과대 노문08) 씨는 “대학생 연극 동아리는 ‘아마추어’라는 단어 자체에 스스로 갇혀있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대학생의 경우 프로와 달리 연극 활동에 물질적인 보상이 없어 열정이 더욱 중요하다. 장 씨는 “동료들에게 ‘우리는 돈을 바라보고 연극을 하는 것이 아니니 순수하게 더 열심히 하자’고 말한다”고 전했다.

원작의 원어로 공연을 한다는 독특한 매력도 있다. 서어서문학과 연극회 회장 이다나(문과대 서문10) 씨는 “쉴 새 없이 빠르게 몰아붙이면서도 생소한 발음과 억양을 가진 스페인어로 연극을 관람한다는 것은 분명 이색적인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캠퍼스 공연의 어려움
대학 연극의 특성상 모든 과정이 학생의 손을 직접 거쳐야만 한다. 가장 급한 문제는 역시 돈이다. 한 회 정기공연을 준비하는 비용만 수백만 원이 넘게 들어 대학생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예전 선배들은 동아리의 수가 많지 않아 대관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해요” 고대극회 유지윤 씨의 말이다. 하지만 지금 연극동아리에겐 먼 이야기다. 그녀는 “공연 연습도 벅찬데 거기다가 연습할 장소를 빌리러 다녀야 하고, 공연 장소 대관비용에 골머리를 썩어야 한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때문에 대부분의 공연 동아리는 후원을 통해 이를 해결한다. 녹두극회의 경우 문과대 지원금과 동아리 지원금을 통해 자금을 충당한다. 티켓 판매를 하지 않는 대신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의 자발적인 후원을 받기도 한다. 개인적인 후원도 이뤄진다. 뮤지컬 동아리 소울메이트는 행정팀이 후원 부분을 전담한다. 2009년에 설립돼 출신 선배에게 후원을 받진 못하지만, 교우회를 통해 선배들에게 후원제안서를 보내 자금을 마련했다. 또한 기업이나 병원에 포스터나 팸플릿 홍보를 약속하며 후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서어서문학과 연극회는 중단됐던 활동이 동문의 후원으로 재개된 경우다. 연극회가 다시 활동한다는 소식을 들은 멕시코 교우회에서 후원이 이뤄졌다.

대학 공연의 한계와 극복방안
공연을 준비하는 연극 동아리에게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자신이 맡은 배역 뿐만 아니라 연출, 기획 등 극 전체적인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 고대극회의 정기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유지윤 씨는 “대부분의 배우가 두 개 이상의 배역을 맡아 연습 시간이 엄청나다. 심한 경우는 4명의 배역을 맡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번 러연회 연극 <코>에 출연한 임다빈(문과대 국제어문12) 씨는 “공연 두 달 전부터 아침 10시부터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기획부도 마찬가지다. 2~3명의 인원이 공연에 필요한 자금을 후원받는 일에서부터 공연장 대관 등 잡다한 문제까지 모두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 대학생 연극의 질이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극단 ‘날으는 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대학생 연극은 준비 시간과 전문성 부족으로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표현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공연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검증’의 도입이 필요하다. 대학생 연극은 열정과 에너지가 가득하다는 큰 강점이 있지만 소위 ‘그들만의 세상’에 빠지지 않으려면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그는 “학내 공연이라는 특수성은 굳이 외부인이 아닌 학내의 검증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며 “기존 작품을 각색하거나 번역하는 경우 자신들의 해석을 넣는 시도는 좋지만 ‘왜’에 대한 고찰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원작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존중이 이뤄져야 한다. 송용구(문과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연출자가 각색을 할 때 원작의 창작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오리지널 공연의 연출을 존중한 다음 창의적 방법론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극 공연을 보고 나면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우리가 무대를 통해 보게 되는 세상과 결국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이 돼보고 싶어 공연 동아리의 문을 두드렸던 사람, 졸업한 지 수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연을 하러 캠퍼스로 돌아오는 사람, 공연이 좋아 지갑에 지폐보다 공연 티켓이 더 많은 사람의 모습이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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