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리대금업자 역할을 맡은 배우가 메이크업을 받고있다. 그녀의 옆에 쌓여있는 화려한 색감의 화장품 공연이 끝난 뒤 여유를 되찾은 단원들. 한 명이 들은 그녀의 역할이 범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사진 | 장선화 기자 seon@
올해로 37주년을 맞은 러시아극예술연구회가 니콜라스 고골의 원작소설 <빼쩨르부르그 이야기>를 각색해 제 33회 정기공연의 무대에 올렸다. 연극에서는 <빼쩨르부르그 이야기>를 이루는 다섯 개의 단편을 하나의 극 안에 모두 담았다. 정기공연 마지막 날인 8월 25일, 오후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이 한창인 대학로 소극장 상상아트홀을 찾았다.

마지막 리허설 무대 전 연극의 기획을 맡은 홍지선(문과대 노문10) 씨를 만났다. 홍지선 씨는 “극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2개월이 걸렸다”며 “기획비 마련과 각색 작업에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이번 연극을 준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짧은 기간 동안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려움에 부딪혔지만, 공연시작 한참 전에 매진된 티켓에 그동안의 고생이 씻겨진 듯 환하게 웃었다.

극장은 2평 남짓의 무대와 8줄의 긴 의자가 놓인 객석으로 꽉 찼다. 객석의 끝에서도 무대 위 배우와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아담한 규모였다. 공연을 앞두고 주홍색 조명이 환히 밝혀진 무대 위에는 이미 서재, 의자와 같은 기본적인 세트 설치가 끝나 있었다. 무대로 나가자 조명의 열기가 느껴졌다. 배우들은 열기를 아랑곳하지 않고 분장을 받는데 여념이 없었다. 먼저 분장을 마친 배우는 무대 뒤편을 부지런히 오가며 소품을 챙겼다.

그 중 온통 하얗게 분칠한 얼굴에 검은 주근깨가 점점이 박힌 배우의 분장이 눈에 띄었다. 에피소드 중 하나인 ‘외투’에서 아까끼 역을 맡은 안서현(문과대 노문12) 씨 였다. “아까끼는 직장 내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이에요”라며 “어느 날 큰 맘을 먹고 새로 산 외투를 강도를 맞아 잃게 되죠”라고 말했다. 안서현 씨는 아까끼 역 외에도 ‘코’에서 하인 역을 겸하고 있다. 한 배우가 다른 역할을 더 맡기도 하는데, 단역의 경우 한 사람이 네 명의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분장을 3~4분 안에 바꿔야 하다보니 급한대로 위에 화장을 덧칠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조명이 들지 않는 무대의 왼편에는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사람들이 기타를 튕기며 앰프를 조율하고 있었다. 중앙동아리 그루터기 소속인 이들은 러시아극예술연구회와의 친분으로 이번 연극의 배경음악 연주를 맡았다. 고정용(문과대 철학06) 씨는 “연극에서 쓰이는 배경음악은 모두 직접 작곡한 곡이에요”라고 말했다. 이들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 이 곳에서 라이브로 배경음악을 연주한다. 눈에 띄는 화려한 색의 옷도 연출자의 부탁에 따라 맞춰 입었다.

여러 번 공연을 치른 무대 위는 긴장감보다는 여유가 감돌았다.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서로 저마다의 아쉬움과 추억을 담기 위해 바쁜 와중에도 셔터를 누르는 손길이 멈추지 않는다. 각자의 역할을 다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소박한 충족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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