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 가운데 재미있는 것은 불구경과 싸움구경이고, 이야기 가운데 재미있는 것은 연애이야기와 도둑이야기라는 말이 있다. 도둑이야기라면 우선 중국의 [수호지]가 떠오르지만, 우리나라에도 재미있는 도둑이야기가 많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재미있는 도둑이야기는 홍명희가 쓴 [임꺽정]이다. [임꺽정]은 1930년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는데, 요즘 표현으로 말하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흥행대작이었다. 폭넓은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문학적 가치가 아주 높은 훌륭한 문학작품이다. [임꺽정]은 미완의 작품이지만, 홍명희는 이 한편의 소설로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작가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3대 도둑이 있었으니, 홍길동과 임꺽정과 장길산이다. 홍길동의 이야기는 허균에 의해서, 또 장길산의 이야기도 황석영에 의해서 소설화되었다. 그러나 3대 도둑이야기 가운데서 역시 [임꺽정]이 압권이다. 임꺽정은 명종 때 도적인데,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힘이 장사였고 대담무쌍한 걸물로 산적패의 두령이 되었다.

작가 홍명희는 이 흥미로운 인물을 중심으로 조선 중기시대의 사회풍속을 다채롭게 재구성해서 보여준다. 아마도 조선 중기의 사회와 삶을 이처럼 구체적으로 잘 보여주는 역사책도 없을 것이다. 가령 관청의 범죄 수사나 형 집행이 어떠했는지도 자세히 나오고, 양반집의 살림살이나 취미생활도 자세히 나온다. 다양한 신분과 직업의 인물들이 나오고, 수많은 민담들이 활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공간들이 묘사된다. 한마디로 [임꺽정]은 ‘조선적인 것’ 또는 ‘우리 것’을 폭넓게 수집해 모아둔 박물관에 비유될 수 있다.

[임꺽정]이 보여주는 ‘우리 것’ 가운데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우리말’이다. [임꺽정]은 우리말의 보물창고로 평가된다. 어휘나 관용어, 속담 등에서부터 구문이나 어투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의 옛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요즘 텔레비전 역사 드라마의 말투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것을 공부하는 것이 [임꺽정]을 읽는 주된 목적은 아니다. [임꺽정]은 어지간한 무협소설보다 재미있다. 그러면서 수많은 인물들을 만나게 해주고, 세상의 우여곡절이나 길흉화복을 사실감 있게 펼쳐 보여 준다. 또 인간의 도리나 세상의 모순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해준다. 생생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실적인 세상이야기가 펼쳐지는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소위 실용서적이라든가 자기개발서 같은 책의 독서로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좋은 문학작품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내면과 정신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

최근 우리 사회 전반 특히 교육에서는 대증요법과 실용지식이 날로 중시되고 있다. 다문화가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문화 과목과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소위 대증요법적 처방이다. 그리고 면접을 잘 보는 방법 같은 것이 일종의 실용지식이다. 이런 것도 물론 필요는 하겠지만, 이런 것들은 문제의 거죽에만 관여할 뿐, 상황이 조금만 달라지면 그 실효성은 상실된다. 문학작품 같은 것들을 통하여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내면을 가꾸고 또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면 다문화 가정의 문제도 또 면접의 문제도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들도 세상사는 이야기들을 보여주지만, 그것들은 대개 가짜 이야기이기 때문에 세상공부를 시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허황된 생각을 갖게 만든다. 엉터리 소설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건강이 크게 좌우되듯이, 무엇을 읽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영혼과 지성이 크게 좌우된다. [임꺽정]은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독서의 긍정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남호 사범대 교수·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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