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업무가 휘몰아치는 어느 날, 문득 숨 좀 돌리려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오히려 숨이 턱 막히고 말았습니다. 묻지마 살인, 흉기난동, 여고생 자살, 임산부 성폭행.

어느 한 단어도 만만치 않은 뉴스 제목으로 도배된 사이트 화면에서 마치 2008년 봤던 추격자 영화를 실제로 만나는 충격을 받은 후 업무도 미루고 호신용품 검색에 들어갔습니다.

호루라기, 스프레이, 가스총, 경보기 등 그사이 늘어난 범죄만큼 호신용품도 발전한 듯 크기도 모양도 다양하더군요. 폭풍검색 중에 최근 범죄 발생 뉴스가 보도된 이후 인터넷 쇼핑몰에서 호신용품 매출이 전월 대비 80%가 늘었다는 기사까지 보고나니 놀라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게 나 뿐만은 아니구나 깨닫게 됩니다.

곧 생일을 맞는 같은 팀 여직원에게 호신용품을 선물하겠다고 하자 대환영이라는 반응도 요즘의 세태를 짐작하게 하네요. 생일선물로 액세서리도 화장품도 아닌 호신용품이라니 10년 아니 불과 3~4년 전에는 상상도 못할 얘기죠.

불안한 개인이 아닌 불안한 사회가 되어버린 현실은 예전 우스갯소리로 위급상황에서는 ‘사람 살려’ 대신에 ‘불이야’라고 외쳐야 살 수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제는 ‘불이야’라고 외쳐도 과연 내가 살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요.

벌써 수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사건 하나가 떠오릅니다. 퇴근해 집으로 가던 길에 살해되어 토막으로 발견된 20대 여성의 살인사건. 당시 이 사건이 더 슬펐던 것은 그 피해여성이 본인의 동네에서 그것도 직접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사실이었을지 모릅니다. 신고하고 구조를 기다리면서 절망과 희망이 교차되는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지 말입니다. 내 손으로 경찰에 신고해도 믿음직스럽지 못한 세상. 깜깜한 밤이면 아무도 없는 것보다 오히려 사람이 지나가는 게 더 무서운 세상. 정말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운 세상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화보다 영화 같은 흉악범죄를 보고 생겨난 지금의 놀라움과 안타까움, 슬픔이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루 이틀이 지나면 다시 잊혀 질지 모릅니다. 이처럼 세상이 점점 무서워지는 것은 바로 우리가 점점 이런 세상에 무덤덤해지고 무관심해지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웃 간에 정이 넘쳐 ‘이웃사촌’이란 말이 생기고 마을 어른들에게도 내 부모 대하듯 예의를 지키던 동방예의지국, 살기 좋은 우리나라가 어느새 이웃을 경계하고 나와 무관한 모든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우리 세대에서 바로 잡아나가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는 더 살기 힘든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한 순간에 마법처럼 모든 게 좋아지는 꿈 같은 일이 생기진 않더라도 모두가 서로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분명 희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는 강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밝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시 무관심해지지만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물론 저부터 먼저 이런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해야겠죠. 저는 움직일 겁니다. 물론 여러분이 함께 해준다면 더 큰 힘이 되겠죠. 나보다 우리는 어려울지 몰라도 나만큼 우리라면 어떨까요. 이제부터 눈에 불을 키고 무서운 세상을 관심으로 바꿔나갈 그 날을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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