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방임은 아동학대의 여러 유형 중에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이를 인지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언론은 빈번하게 신체학대나 성학대와 관련된 매우 자극적인 사례를 보도하면서도 가장 극적이지도 생명에 위협적으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 방임의 사례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아동은 극적인 학대의 상황보다는 일상적인 방임의 상황에 만성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방임의 경우 학대보다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사회적 관심도 쉽게 받지 못했고 적극적인 개입의 대상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들 중 약 절반이 방임의 희생자로 간주할 수 있을 만큼 방임은 학대의 다른 유형들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으로 피해를 가져온다. 특히 방임은 가해자나 외부인에게 문제라는 인식자체가 전혀 없어 아동이 성장하여도 계속해서 누적되어 나타나기 쉽다. ‘조용한 폭행’인 방임은 타인과 관계를 맺거나 주변세계를 탐색할 의지가 사라지도록 천천히 지속적으로 아동의 영혼을 잠식해 들어간다. 방임부모로 인한 불안정 애착은 아동의 전 생애주기 발달에서 다양한 관계의 문제를 심각하게 일으킬 수 있다. 부부생활 적응과 부모의 역할 수행에도 어려움을 초래하여 세대를 이어가며 방임문제가 대물림되기도 한다.

아동방임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아동방임의 예방을 위해서는 방임에 대한 인식개선이 출발점이다.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쟁취하지 못하는 아동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방임문제에 대한 사회 전체의 관심과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학대가 범죄인 것처럼 방임도 범죄이다. 학대의 경우는 이를 개인의 가정사가 아닌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예방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지만 방임의 경우는 아직도 사회적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자녀가 방임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보호자뿐만 아니라 방임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회일반의 인식도 하루 빨리 개선될 필요가 있다.

방임은 정상적인 아동양육에 대한 정보를 몰라서 일어나기도 하고, 아동양육정보를 알아도 어쩔 수 없어서 일어나기도 한다. 정상적인 아동양육에 대한 내용을 모르는 경우에는 부모교육이 매우 효과적이다. 일반 부모들이 갖고 있는 양육의 부담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부모역할에 적합한 사회적 지원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요구되며, 부모교육은 그 일환이다. 부모교육이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는 물론 다양한 지역사회기관에서 제공하지만 부모교육이 필요한 부모들은 여러 이유로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부모교육을 혼인신고나 자녀의 출생신고를 할 때, 자녀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처음 보낼 때, 자녀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때 등 부모가 공권력에 공식적으로 접촉할 때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또한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에서는 대학생의 사회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사회봉사교육을 확충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부모준비를 가능하게 하는 예비부모교육을 필수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반면 아동양육에 대한 내용을 이미 알고 있어도 과중한 가사일과 직업 활동으로 인한 시간부족 때문에 방임상황에 노출될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국가나 지역사회에서 부모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부모의 역할을 대신할 만한 다양한 대안을 만들어 정책화해야 한다. 방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기업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가정친화정책을 도입하거나 가정방문의 제도화, 보육시설의 확충과 공보육 확립, 지역아동센터나 방과후 교실 등의 활용으로 가정에서 방치되는 아동들을 조기에 발견하여 적극적으로 지역사회보호체계 내로 끌어내야 한다.  

우리나라 아동복지는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런 보호와 관심을 받지 못하는 방임아동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이들은 우리가 빨리 다가와 적시에 적절하게 개입해 주길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방임아동의 온전한 권리 보장을 위해 사회 모두가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전문대학원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