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정계가 계속 시끄럽다. 대통령 선거를 100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이 시점에서 여야(與野)는 각각 진영 안에 다시 파당을 만들어 진보다 보수다 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하고 있다.

진보란 개념은 18세기 철학사상에 나타난 역사관 사회관 등 역사를 단계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와 상대적인 개념으로 사용할 때의 진보는 철학적 개념의 의미는 아니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로서 육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연과학적으로 살게 되고, 또 문화적인 존재로서 문화과학의 틀 속에서 살게 된다. 문화는 한 군데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새 것이 생성되면 그에 따라 이전 것은 낡은 것이 되고, 그 위에 다시 새 것이 덧씌워져서 변화하게 된다. 역사의 흐름은 사회의식에 바탕을 둔다. 현재는 과거의 소산이며 미래에 연결된다.

우리 정치사에서 진보 정당이란 용어를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956년 11월 10일, 조봉암 윤길중 등이 중심이 된 진보주의자들이 맨 먼저 모여 조직한 혁신 정당의 이름이 ‘진보당’이다. 당시 진보당의 정강(政綱)은 ‘책임 있는 혁신정치’, ‘수탈 없는 기획경제’, ‘민주적 평화통일’ 이었다. 그들은 정치란 국민이 배부르고 등 따습고 편안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고, 자유는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 최상의 가치이므로 모든 출발점은 인권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당시 진보당의 정강과 정책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얻은 교훈임을 알 수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한국휴전협정’이다. 이 협정을 통해 볼 때, 한국전쟁이 남북한의 무력, 또는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의 전략만으로 승패가 결정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우리의 힘과 국제적 협력을 얻어 평화통일을 하고 전쟁으로 인한 무질서와 부패정치를 쇄신하는 것을 새로운 정치 진보 정당의 사명으로 보았다.

둘째, 서독에서 1951년 7월 2일 선포된 ‘푸랑크프르트선언’이다. 이 선언은 히틀러와 스탈린의 전체주의 독재라는 역사적 체험에 입각해서 민주적 사회주의의 목적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하여 사회보장과 완전고용 등 사회주의적 계획을 시행하고, 좌우 모든 형태의 독재로부터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정치적 민주주의가 불가결함을 강조한 데서 교훈을 얻었다.

이렇듯 역사적 사실을 통해 다른 사상이나 주의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서로 수렴해 감을 파악하고, 거기에서 ‘진보’와 ‘혁신’을 터득한 것이다.

그 후로 한 세대가 지난 지금 탈냉전 세계화 시대에도 한국 진보주의자들은 아직도 1980년대 민주화 투쟁 시기에 외쳤던 ‘민족해방’, ‘민중해방’, ‘반자본’, ‘반독재’, ‘반미운동’ 등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한 술 더 떠서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해체, 애국가 거부 등을 주장하는 진영이 주류가 되면서 당이 분열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필요에 따라 연대하여 국방동맹을 하는 세계화 시대에 과연 자주국방만을 유독 강조할 필요가 있는가?

지금은 진보도 1980년대 유아기에서 성년기로 접어들어야 할 때다. 가치창출 방식이 경쟁과 사유에서 협력과 공유로 변하고 있다. 지식노동자 육체노동자 퇴직자 임금생활자 학생 주부 등 개별적 사회적 약자는 물론이고, 협동조합운동 주민자치운동 지역순환생태공동체운동 등 상대적으로 그 세(勢)가 미약한 사회운동단체와 연대하는 방향으로 진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좋은 진보가 있어야 좋은 보수도 있을 수 있다. 아울러 좋은 보수가 있어야 좋은 진보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긍정적인 경쟁이 이루어질 때 국가가 발전하고 국민들은 제대로 된 복지를 향유할  것이다. 대선을 3개월 남겨둔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 내 진보와 보수의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경쟁을 기대해 본다.      

김용기(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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