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아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사실 좀 놀랐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회사 선배가 올해 수습기자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들은 말을 전하며 “정말 취업이 힘들긴 힘든가 보다”라고 덧붙였다. 1990년대 후반 입사한 선배들과의 점심 자리에선, 대다수가 ‘졸업 예정자’로 입사했다는 얘기에 내가 놀랬다. 2000년 후반 입사자들은 대부분 졸업한 지 1년 이상은 지난 상태였다. 면접에서 “졸업하고 뭐했기에…”라는 질문이 나오는 게 낯선 일도 아니었다. 20대 신입사원을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10년 사이에’ 20대 중·후반~3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합격만 시켜주신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예비 산업군이 돼 있었다. ‘청년실업’의 문제점을 새삼스레 실감한 대화였다.

그런데 취업도 해피엔딩이 아니다. 취업 다음엔 결혼의 벽이 있다. 대학 때 수백 단위의 등록금으로 고생했다면, 결혼 땐 그 단위가 천·억까지 올라간다. 답은 둘 중 하나다. 결혼을 못하거나, 수십 년 동안 빚쟁이로 살거나. 양쪽 모두 해피엔딩은 아니다. 그래도 어떻게 결혼을 한다 치자. 아이를 낳으면? 지금의 20대에겐 돌파구가 없다. 평생을 보이지 않는 벽과 싸우며 살아가야 한다. 술 마시며 한풀이하거나, 혼자 쓰린 속을 달래가면서. 아, 이젠 술도 돈이 넉넉해야 마실 수 있을 거다. 없는 돈으로 슈퍼에서 싼값에 술을 사 학교 잔디밭에 앉아 마시는 ‘사치’조차도 이젠 막겠다고 하니. 우리에게 ‘쨍하고 해 뜰 날’이 있긴 있을까.

이런 갑갑함에 기름을 붓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구직 누리집인 알바몬이 대학생 4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학 등록을 포기한 이유 중 1위가 학비 부담이었다. 10명 중 3명이 휴학을 했고, 휴학한 10명 중 3명은 학비 부담을 이유로 꼽았다. 2위는? 취업준비. 결국, 휴학생의 10명 중 절반은 등록금이나 취업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셈이다. 거기에 연세대가 재수강 제도 폐지를 검토한단 보도까지 겹쳐지니 대학생들의 숨 쉴 공간은 점점 더 줄어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다수 대학이 누군가는 C 이하를 받아야 하는 상대평가제를 도입하고 있는 마당에 재수강까지 없앤다면….

대학생들은 정말 화나고 짜증나지 않아서 묵묵히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 보다 힘든 이 틈새를 어떻게든 ‘나만은’ 지나가려 애쓰는 것일까. 그래도 문제고 그렇지 않아도 문제다. 속에 쌓인 분은 언젠가 터질 것이다. 우리는 노예 아닌 인간이므로. 한 번의 여유조차 누릴 공간이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그 ‘화’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까. 그리고 그렇게 터져버린 분노들은 이 사회를 또 어떻게 바꿀까. 나는 그게 가장 걱정이다. 마음속에 묻어둔 한이 어떤 괴물이 되어 돌아올지가.

김민경 한겨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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