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추석이다.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기꺼이 민족의 대이동에 동참해 교통체증을 감수하고 고향으로 향하고 싶어 하는 추석. 그렇지만 대학생이나 취업을 준비생들에게 그리 반갑지 않은 것이 바로 명절이다. 너도나도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따스한 정을 나누는 이 자리가 가족과 친척이라는 자격으로 인생에 공식적인 훈수를 두는 시간이기도 하기에, 아직 오롯이 자리를 잡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없이 불편한 날이 아닐 수 없다. ‘난 명절이 싫다 한가위라는 이름 아래 / 집안 어른들이 모이고, 자연스레 / 김 씨 집안의 종손인 나에게 눈길이 모여지면 / 이젠 한 가정을 이뤄 자식 낳고 살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 네가 지금 사는 게 정말 사는 거냐고 / 너처럼 살다가는 폐인될 수도 있다고 / 모두들 한마디씩 거든다 난 정상인들 틈에서…’(유하, ‘달의 몰락’)라는 시에서 가족들, 친척들의 등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기조차 불편한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대학교 4학년, 큰 시험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서 추석을 맞이했을 때였다. 먼 길을 오가며 공부 시간을 빼앗기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어려운 집안 사정을 고려해서라도 시험에 꼭 붙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들이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아 귀향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래서 명절 연휴 동안 휑한 하숙집에서 외롭고 힘든 시간을 꾸역꾸역 보냈었다.

그런데 시험에 결국 낙방했고, 실패한 수험생 신분으로 갑작스럽게 설을 맞이해 귀향해야 했다. 이제껏 명절이면 친척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삶에서 처음으로 실패한 이야기를 안고서 귀향하자니 비참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 명절에, 오지랖(?) 넓은 친척들의 말씀에 마음이 훌쩍 자람을 느꼈다. 풀이 죽어있던 내게 좋은 인생 공부했다고 생각하라며 다독여주시고, 힘들 때 연락하라고 조용히 따로 부르시던 친척들…. 물론 이분들 앞에서 부끄럽고 쑥스러운 마음이 왜 없었겠냐마는, 늘 완벽하고 잘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왔던 내가 가족들 앞에서는 부족하고 못난 모습이어도 괜찮다는 점에서 큰 힘을 얻었다. 그제야 가족이란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명절을 맞아 많은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의도치 않게 이야기로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들이 생긴다. 큰 시험과 취업을 앞두고서, 이런 자리를 아예 피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부족해도 가족이고, 넘쳐도 가족이다. 너무 자격지심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고, 마음을 해칠 뿐이다. 그리고 불편하게 만드는 조언들을 되도록 별 생각 없이 흘려보내기 바란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실패나 부진을 일일이, 오랫동안 기억하거나 곱씹지 않는다. 그냥 생각 없이 한 말이거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건넨 말일 게다. 이러한 말들을 듣는 것을 피하고자 1년에 한두 번 겨우 만나는 소중한 이들과의 시간마저 피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오랜만에 ‘나’를 내려놓고, 험난한 세상을 견디며 살아나가는 피붙이들끼리 살을 맞대고서 서로의 안부를 따뜻하게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가족이니까 잘 될 거라고, 잘 하고 있다고 좋은 덕담들로 서로의 마음을 돌보아 주며 함께 일어서는 훈훈한 명절을 기원한다. <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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