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 다가온다. 한글날 덕분에 최소한 1년에 한 번씩은 우리의 말글살이를 뒤돌아 살필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하다. 올 한글날에도 우리의 말글살이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한다. 방송 언어의 품격 논란과 청소년들의 욕설 문화에 대한 우려가 최근의 화제였던 만큼, ‘언어의 품격’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면 어떨까?

우리는 누구나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하고 싶어 한다. 저품격 언어를 구사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저품격 언어를 구사하는 일은 그리 골몰할 필요가 없으니 바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품격 있는 언어란 무엇이며,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지금 우리의 언어 현실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자. 학자들의 생각을 묻는다면 학자들은 왠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세상이 점점 혼탁해지면서 그러한 현실이 언어에 반영된 결과, 저속한 은어, 속어, 욕설이 판을 치며 외래어가 침투하여 국적불명의 언어가 되고 있어 언어의 품격을 높이고 언어를 순화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은 거의 40년 전인 1973년 10월 9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혼탁한 대중화 벗고 자랑스런 우리말로’라는 제목의 칼럼 중 일부이다. 지금의 언어 현실에 대한 지적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날짜만 바꾼다면 최근의 글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1981년에도 ‘우리말, 품격을 잃어간다’라는 제목의 칼럼이 있고(경향신문, 1981년 7월 16일), 1992년에도 ‘대중화시대에 언어는 예전의 품격을 잃어가고 있으며, 대중매체의 악영향으로 젊은이들의 말습관에 문제가 생겼다(동아일보 1992년 10월 9일)’는 기사가 보인다. 물론, 최근의 신문기사에서도 ‘우리 사회의 언어 사용과 의식이 매우 혼탁해지고 있다(세계일보, 2011년 2월 9일)’, ‘우리말이 거칠고 막되게 됐고, 언어의 품격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문화일보, 2011년 10월 7일)’와 같이 유사한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욕설 문화에 대해 개탄하는 기사 또한 196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보인다. 1962년 11월 19일자 동아일보의 가십난인 ‘횡설수설’에는 어린이들의 일상 언어에서 욕설과 악언이 아무렇지도 않게 쓰여 우려스럽다는 내용이 있다. 30년이 지난 1992년 10월 9일자 동아일보 기사의 제목은 ‘외래어 범람, 욕설일상화, 청소년언어 멍든다’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12년 지금도 우리는 청소년의 욕설 문화를 걱정하고 있다.

위의 기사들만 보았을 때 지난 50~60년 동안, 우리말의 품격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고, 어린이 청소년들은 어릴 때는 욕설 문화에 멍들었다가 이상하게도 어른이 되면 갑자기 그 멍이 풀려서 욕설 문화에 멍들어 있는 후대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걱정한다.

뭔가 좀 이상하다. 국민 전체의 교육 수준이나 생활수준이 지난 60년 동안 괄목할 만큼 높아졌고, 국민들의 의식 수준 또한 매우 높아졌다. 그런데 유독 언어 품격만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지난 1년간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으로서 한 달에 두 번씩 회의에 참석하여 방송 언어 실태 조사 결과를 지속적으로 살펴보았다. 사실, 언어 품격을 추락시키는 주범으로 늘 지목되어 온 방송 언어는 일부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그리 심각한 편이 아니다.

사실, 언어 품격이란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 말에 ‘품’을 들이는 지속적인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고, 도달점이 아니라 지향점이다. 내 말에 ‘품’을 들인다는 것은 내 말을 듣는, 혹은 들을 수 있는 사람들과 내가 말하고 있는 상황 등을 다각적이고 다면적으로 고려하면서 언어를 구사한다는 뜻이다. 즉, 언어 민감도를 높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는 높은 언어 품격을 갖는 것이 어렵고, 청소년의 말은 기성세대에게 거칠고 어눌하고 생각 없는 것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언제나 ‘요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의 걱정거리가 되는 것이다.

신지영 문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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