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책을 참 사랑합니다” 9월 25일에 열린 제 2회 저자초청강연회에서 신경숙(49) 작가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녀에게 책을 쓰는 것과 읽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같다. 어느새 한국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한 신경숙 작가의 작가인생을 들여다봤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1985년 데뷔 후 27년간  문학가로서 활동했다.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힘들었던 일이 있다면
우선 계속 작품을 써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의미가 있습니다. 나는 22세에 등단했고 <풍금이 있던 자리>가 출간되기 이전까지 8년 동안은 글 쓰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모두 가져봤어요. 고등학생이던 16세부터 서른 살이 되기까지 대학을 다니던 2년을 빼놓고는 항상 일을 했어요. 작품을 써서 생존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지요. 작품은 작품대로 쓰고 또 일은 일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풍금이 있던 자리>를 독자들이 많이 읽어준 덕분으로 내게 작업실과 넓은 책상이 생겼죠. 서른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전업작가로 지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외딴방>, <리진>, <엄마를 부탁해> 같은 작품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작품 쓰는 일은 한 작품을 마치면 백지로 돌아가 버립니다. 매번 말을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완성이라는 것이 없는 게 작가 생활이죠. 그 긴장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지요.

언제부터 글쓰는 일을 시작했는지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열다섯 살에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어렸을 때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시골집엔 돈은 별로 없었지만 대신 형제들이 많아서 위 형제들이 어디선가 책을 많이 빌려왔어요. 특히 바로 위의 셋째가 책을 좋아했죠. 그가 빌려다가 마루에 놓아둔 책들을 내가 먼저 읽기 시작했어요. 그 기간이 몇 년 되었는데 처음엔 만화 위인전 동화책들이었다가 셋째의 책 읽는 수준이 상당히 높아지면서 나도 같이 높아졌죠. 셋째가 중학생이고 내가 초등학교 상급반이었을 때 신경림의 <농무>, 황동규의 <삼남에 내리는 눈>, 정현종의 <고통의 축제>같은 시집을 읽었던 기억도 나요. 셋째가 유일하게 자기 책상의 중앙에 꽂아놓은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란 책도 뜻도 모른 채 읽었죠.

하여간 활자로 된 건 일단 무조건 다 읽는 습관이 그때부터 생겼어요. 길가의 간판에서부터 배를 싼 신문지 쪼가리까지. 김현, 김윤식 평론, 이청준 소설들도 셋째 덕분에 일찍 읽기 시작했죠. 중학생 때는 여중 앞에 30원을 내면 책을 빌려주는 곳이 있었는데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책에 빠져든 건 ‘외로워서’였던 것 같아요. 나는 늘 사람들이 북적이는 대가족속에서 성장했는데도 늘 혼자 있는 것 같았어요. 어이없게도 아주 일찍부터 무엇인가를 상실해버린 느낌을 지니고 성장했어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내가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꼬치꼬치 캐물을 때가 종종 있지요. 게다가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 내 눈엔 참 이상했어요. 마당에다 애써서 기른 집짐승들을 잡아 먹는 것도 이상했고, 겨울을 잘 넘기고 해동이 될 때면 마을에 상여가 나가는 일이 많은 것도 이상해서 계속 따라갔던 기억들도 납니다. 마을에 기찻길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사고로 또 어느 때는 거기 가서 자살을 하기도 했어요.

책을 읽으면 이상하게 외롭지 않았어요. 내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들의 답이 책속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책은 특히 소설은 뭔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편이라는 것, 그것이 매혹적으로 다가왔어요. 못나고 슬프고 시니컬한 패배자들이 오히려 배려 받고 있는 느낌에 이끌렸어요. 게다가 어떤 아름다움 같은 것, 의지하고 싶은 것, 고난에 처한 인간이 그 상황을 견뎌내고 밀어내고 나아가는 방식에서 느껴지는 공감과 감동 같은 게 ‘나도 이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꿈을 꾸게 했던 것 같습니다.

신경숙 개인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내가 작가가 되기 이전의 내게 문학이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저 너머에 무엇인가 다른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은 언제나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죠. 살아있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게 했고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  다른 시간을 믿고 기다리게 해주었으니까요.

지금의 내게 문학은 내 삶 자체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버릇인데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조금만 시간이 나면 밤기차를 타고 부모가 살고 있는 정읍 집에 다녀오곤 했었어요. 도착하자 마자 아침밥만 먹고 다시 돌아와야 하는 때가 많았죠. 밤기차에 몸을 실고 어두운 차창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보면 아주 가끔 산 밑에 어느 집이 켜놓은 불이 ‘반짝’하고 빛날 때가 있었어요. 내게 문학이란 어쩌면 그런 빛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순간 아주 짧게 반짝이고 사라지지만 그 빛이 어둡고 긴 시간을 다시 이어 주고 또 이어주고 한다는 생각. 그 빛을 따라온 것 같아요. 지금은 꺼진 듯이 안 보이는 그 빛이 어느 순간 존재를 드러내며 다시 반짝여줄 그 순간들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까지 단편집 6권 장편소설 7권 그리고 산문집과 짧은 소설집 등 17권의 저서를 냈다. 작품 구상은 주로 어떻게 하는가
작품구상을 따로 한다기보다는 동시대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내가 경험하며 느끼는 것들이 작품이 됩니다. 내가 서재에 있는 시간은 주로 새벽에서 오전시간입니다. 그때는 오로지 혼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때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나는 내 작품이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작품이길 바랍니다. 내가 어떤 작품을 쓰든 내가 쓰는 문장 속에서 궁극적으로는 인간됨의 존엄성,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 허무를 견디거나 뚫고 나가는 어떤 냄새를 맡기를 바라지요. 이미 쓴 작품으로 얘기되기보다는 새로운 작품으로 이야기되는 현재형의 작가로 존재하고 싶습니다. 내가 죽은 후에도 ‘그 작가가 살아있다면 지금 쯤 어떤 작품을 썼을까?’라며 상상하게 하는 작가로요.

신경숙 신경숙 작가에게 대학은 어떤 의미였나.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다녔습니다. 은사들도 대부분 현장에서 활동하는 시인, 소설가들이어서 그들과 함께 강의실에 있는 것 자체가 배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게 20대는 시위 때문에 거리에 가득 찬 최루탄 가스 냄새,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 문학코너에 선 채로 작품들을 읽었던 일, 독서실에 들어가 새벽까지 글을 써보려고 했던 일 등으로 남아있습니다. 읽고 쓰고 토론하는 일이 수업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문학적인 분위기를 내 것으로 향유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대학생들에겐 서른 이후엔 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단련시키는 20대 시절을 만들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면 개인의 삶의 질은 물론이고 자연스럽게 그 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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