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공맹孔孟의 도리, 가르침은 우리 역사 속에서 한때 틀림없는 “정답”으로 자리를 잡고 온갖 권세를 부리고 영예를 누린 적이 있으며 여전히 위세를 떨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공맹의 도리 건너편 풍경 속에 흔히 볼 수 있는 게 소위 노장老莊철학이다. 노장의 이야기는 세속에서 크게 권세를 잡은 적은 없으나, 진리를 찾는 이들은 물론,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끊임없는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온 듯하다. 하나로 묶여 있는 노장을 떼어서 그 가운데 장자를 오늘 학생들에게 권해본다. 물론 장자는 사람의 이름이자 책의 이름이지만, 책을 읽는 일이 곧 사람을 읽는 일이니 책이든, 사람이든 상관없을 듯하다.

장자의 이야기가 펼쳐 보이는 지평은 넓고 풍경은 참으로 다양하다. 조삼모사의 원숭이, 호접몽의 나비, 우물 안 개구리, 하늘 위의 대붕, 바다 속의 곤, 크기가 나무, 까치, 매미, 사마귀. 소를 잡을 때 나는 소리를 음률에 맞아 노래가 되고, 동작이 춤이 되어 있는 포정, 매미를 줍는 듯이 잡는 곱사등이, 바람 소리 앞에 땅 하늘의 피리소리를 듣는 이, 세상을 떠나 바위굴에서 물만 마시며 도를 닦다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힌 선표, 도둑, 참으로 큰 스승. 신화 속의 신들, 신화와 역사 속의 임금들, 저마다 한 지혜 한 이론 하는 혜자, 열자, 공자, 안회, 노담, 공손룡과 같은 이들 ...... 사람이든, 짐승이든, 나무든, 물고기든, 새든, 신선이든 혹은 또 다른 무엇이든 결국은 사람이야기이니, 장자가 드러내 보이는 사람도 끝이 없고, 그들의 이야기도 끝이 없다. 더불어 읽는 이의 구경도 끝이 없고.

사람이 시대를 넘어설 수는 있지만, 시대를 벗어날 수는 없다. 시대는 사람에게 깊은 그림자를 남기고,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시대와 더불어 산다. 장자는 전쟁의 시대,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03~221)를 산 사람이다. 힘 있는 이는 죽이며 세력을 더하고, 힘 없는 이는 죽어가는 시대, 병사는 싸움터에서 죽고 백성은 굶주리지만, 왕은 여전히 싸움을 명하는 시대가 싸움의 시대이다. 인간과 인간집단의 욕심, 다툼, 폭력, 야만, 미움, 증오가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때가 전쟁의 시대이다. 그 속에서 장자는 살았고, 생각했고, 글을 썼다. 자신과 세상을 두고서 말이다.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에서 폭력과 야만의 냄새가 풀풀 풍길 때, 그 속에서 온전한 인간과 사회를 살아가는 꿈이 포기되지 않을 때, 새로운 세상이 마음 속에 꿈틀거릴 때, 장자를 손에 들어 보라. 그의 눈길과 마음길을 따라가며, 당황과 황당을, 유쾌와 상쾌를, 지혜와 도전을 더불어 경험해보자.

장자의 나비 꿈, 호접몽이라 불리는 이야기 정도는 짧게라도 하고 가는 것이 장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리라. 꿈은 사람이 허황해서 꾸는 게 아니라, 포기하지 않기에 꾸는 게다. 현실을 모르거나, 도피하기 위해서 꾸는 게 아니라, 현실을 극복하고 나아가기 위해서 꾸는 게다. 나비와 장주가 같진 않지만, 깨어서 나비를 꿈꾼 장주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고, 또 꿈속에서 나비였던 장주는 깨어서 다시 나비를 꿈꾸며 살 수 있었으리라.

장자 읽기에 덧붙이는 말 몇. 1) 그의 글은 일반적인 책이라기보다는 글로 써놓은 그림, 혹은 음악에 더 가까운 듯. 설명이나 지침, 논리를 찾으려 하지 말고, 보고, 듣고, 만지며 느낌과 영감을 누리는 게 더 좋을 듯. 2) 사람들이 장자에게 붙여 놓은 물아일체, 절대 자유, 천지자연, 도, 초월 따위의 여러 이름표는 떼어버리고 그냥 글 속에 있는 그대로의 장자와 마주 앉아 잘 보고, 듣고, 생각하면 좋을 듯.  3)노자와 장자를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하는 일은 무식과 편견에서 오는 용기라고 말하는 이도 있음을 기억하고 노자는 잊어버리면 좋을 듯.

김지형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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