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白鷺)가 지나니 어느새 풀벌레 울음소리가 제법 청아하다. 창으로 내보이는 하늘이 마냥 높아지는 듯하여 오랜만에 ‘다람쥐길’을 걸어볼 양으로 서관을 나선다. 폭도 좁고 포장도 되지 않은 숲길에는 자주 다람쥐도 지나다녀 이름 지어진 우리 고대인들의 뒤안길이다. 누구는 그 길을 철학자의 길이라 했고 혹은 시인의 길이라 했던, 서관에서 대도관으로 이어지는 푸른 숲길을 따라 걷는다. 대도관에서 본관 앞을 지나 다시 서관으로 올라온다. 제철 모르고 어리둥절 피어나는 ‘스팀 목련’이 있는 서관의 서쪽 출입구를 나와 동탁(東卓) 조지훈 선생님의 시비가 서 있는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아직은 유록색을 띤 은행나무 사이로 보이는 인촌기념관의 우람한 모습과 숲속 우뚝 솟아있던 인촌묘소가 오버랩 된다. 학창시절의 그 하늘빛은 왜 더 푸르게 기억되는 것일까?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파르라니 깎은 머리/박사 고깔에 감추오고/두 볼에 흐르는 빛이/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오월의 숲으로 날아가는 장끼의 울음 같던, 그 탁음의 목쉰 소리로 <승무>를 읊조리시던 조지훈 선생님. 당당하신 체구와 뿔테 안경 속으로 빛나던 시혼(詩魂)에 전율하던 젊은 날이 그리워진다. 고대인들이여, 이 가을에 조지훈 선생님의 시비 앞에 서보라. 그리고 그분의 시 정신에 탐닉해 보라.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곳에 몸담고 있는지를 돌아보라.

돌아내려 오는 길목에 걸린 플래카드에 시선을 멈추게 된다. 재학생을 위한 귀향 버스 안내문이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아가는 재학생들을 위한 배려가 담긴 ‘글로벌 유니버시티’의 모태인 ‘민족 고대’의 한 모습이다. 그 오래전 영호남과 관동지방으로부터 이 사학의 명문으로 학문을 닦으러 와 훗날 나라의 동량이자 반석이 되신 동문 선배님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잠시 귀향길 안내 플래카드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그분들은 얼마나 험난한 길을 오가셨는가. 얼마 전만 해도 기차표 한 장을 사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서울역 앞에 장사진을 치던 장면이 떠오른다. 당시보다 국민소득이 200배가 늘어난 지금에도 역시 고향 가는 길은 늘 번잡하고 기다림의 인내를 수반해야 하는 길이긴 하다. 하지만 그 길은 뿌리를 찾아 본원으로 돌아가는 길이며, 부모와 형제를 찾아가는 그 길이기에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그 귀한 나무들의 뿌리를 찾아가는 의식인 재학생의 귀향길을 안내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민들레 홀씨처럼 온 세상에 흩어져도 뿌리를 내리며 사는 디아스포라, 그들이 언제 하루라도 고향을 잊은 적이 있던가. 수구초심(首丘初心)으로 죽어서도 묘비를 동쪽으로 세우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지 않은가. 또한, 중국인들의 명절마다 이어지는 민족대이동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고려대학교는 전인교육이 이루어지는 캠퍼스의 공동생활을 통해 내려진 뿌리를 바탕으로 세계인으로 거듭 태어나는 고대생의 마음의 고향이다.

육신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을 보며 ‘마음과 정신의 고향’ 고려대학교를 다시 생각해 보자. 마음의 고향을 가진 이들은 행복하다. 더욱이나 고향에 아름다운 추억을 지닌 이들은 더더욱 행복하다. 작금의 세상 흐름이 제아무리 탁하더라도 어딘가에 한 줄기의 맑은 샘물은 흐르고 있다. 그것은 ‘글로벌 유니버시티, 민족고대’를 빛내주는 또 하나의 조지훈 선생님의 시심(詩心)이다. 이 청량한 가을에 마음 밭을 고르며 향학열을 불태울 때, 잠시 호상 앞에 서서 이제는 만인의 시구가 된 그분의 시를 마음에 새기며 고대인의 뿌리를 깊고 힘차게 뻗어 가자.

“민족의 힘으로 민족의 꿈을 가꾸어 온/민족의 보람찬 대학이 있어/너 항상 여기에 자유의 불을 밝히고/정의의 길을 달리고 진리의 샘을 지키노니/지축을 박차고 포효하거라/너 불타는 야망 젊은 의욕의 상징아/우주를 향한 너의 부르짖음이/민족의 소리되어 메아리치는 곳에/너의 기개 너의 지조 너의 예지는/조국의 영원한 고동이 되리라”

신우균 문과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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