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3월 한 달 신입생 기분을 맛보기가 바쁘게 유신 반대 데모가 격렬해졌다. 대학 신입생이었지만 나는 신문기자가 될 팔자였는지 유신체제가 민주주의를 말살한 독재정치라는 확고한 인식체계를 갖고 있었다. 겁이 나서 선두에 서지는 않았지만 데모대의 뒷줄에서  “유신 철폐” 구호를 함께 목청껏 외쳤다. 그러다가 경찰 병력이 학교 안으로 진주하면 부리나케 줄행랑을 쳤다. 동작이 느려 붙잡혔다가는 성북경찰서나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가 두들겨 맞고 학교에서는 정학 퇴학을 당하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그해 4월 8일 고려대학교에 긴급조치 7호로 휴교령이 떨어져 교문 앞에 탱크가 진주하고 집총한 공수부대원들이 등교를 막았다. 단일 대학교에 대통령 긴급조치로 휴교령이 떨어진 것은 고려대가 유일했다. 시골에 내려가 놀다가 다시 5월 중순 학교 문이 열려 두 달 동안 공부하고 중간고사 없이 기말고사로 한 학기를 마친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에 고대신문을 받아들면 혹시 시국과 관련한 글이 있으려나 하는 기대에서 샅샅이 뒤져봤다. 그러나 고대신문도 유신 정보당국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갈증을 채우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신문은 캠퍼스 곳곳에서 사랑을 받았다. 나의 신문 글쓰기 연습도 고대신문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고대신문에 투고한 글이 실리면 오려서 보관하며 몇 번 씩 되풀이해 읽었다.

  유신체제에서 2학년 마치고 군대 3년 짜리로 갔다와 3학년에 복학한 것은 전두환 군부가 집권한 1980년 3월이다. 그해 5월 광주사태가 터지고 또 교문 앞에 탱크가 진주하고 군인들이 바리케이트를 쳤다.  

  나는 유신과 전두환 군부독재에 짓눌려 학창생활을 보냈다. 고대신문도 젊은 학생기자들이 쓸 것을 제대로 못 쓰고 교문 앞 술집에서 울분의 소주잔을 기울이는 것을 목도한 적이 있다. 고대신문 65주년에는 이런 아픔과 질곡의 세월이 녹아 있다고 본다. 지금은 신문이 실을 가치가 있는 모든 기사를 실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고대신문은 시대의 변화를 주시하며 학생들이 갈증을 느끼는 기사를 많이 실어주기 바란다.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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