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념]시대 그리고 우리와 함께한 65년 역사
[창간기념]시대 그리고 우리와 함께한 65년 역사
  • 박재욱 기자
  • 승인 2012.10.29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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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신문이 걸어온 길

국내 대부분의 대학이 대학신문을 발행한다. 대학신문은 대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시간 학생과 함께 해왔다. 학내구성원들에게 때로는 일상의 소소한 오락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시대의 촛불이 되기도 했다. 눈에 익었기에 무심코 지나치는 대학신문. 이들의 역사를 훑어봤다. 

대학매체의 탄생
대학신문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발행되기 시작했다. 정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은 종합대학이 늘어나면서, 1947년엔 본교의 ‘고대신문’, 중앙대 ‘중대신문’, 서울대 ‘대학신문’ 등이 창간됐다. 한국전쟁으로 잠시 소강상태를 맞았던 대학신문은 1952년부터 1960년까지 32개 신문이 새로 창간될 만큼 양적인 팽창을 거듭했다.  
대학신문의 특성은 일반적으로 공공적인 사실이나 사건에 관한 정보를 보도하고 논평하는 ‘저널리즘’과 고등 교육 기관의 학문적 특수성인 ‘아카데미즘’의 결합으로 정의된다. 1960년 이전까지 초기 대학신문은 학사행정 정보를 학내에 전달하고 대학 연구 활동과 성과 등을 대내외적으로 홍보하는 기관 매체의 성격을 보였다. 내용면에서도 사회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학내 동정과 학술적 논의 위주의 기사를 다뤘다.

갈등의 시기
대학신문은 독재정권 하에서 제도권 언론이 정경유착, 권력의 탄압 등으로 비판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대안매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1960년 4.19혁명을 기점으로 대학생이 사회 운동을 주도하면서 학내보도에 국한됐던 대학신문의 보도 영역은 점차 사회로 확장됐다. 특히 1964년 한일수교 비준 반대운동, 1969년 삼선개헌 반대운동 등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대학신문은 이들의 소식을 전달하고 논평하면서 저널리즘의 저변을 넓혔다. 또 ‘고대신문’, ‘대학신문’ 등은 좌담회를 주최해 공론의 장을 열고 학내 구성원에게 그 내용을 전달했다.
하지만 1980년대 군사정권의 대학 감시가 확대되면서 대학신문은 ‘어용’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80년 5.17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문교부를 통해 정부의 대학신문 제작 지침이 내려오자 대학당국의 사전 검열이 증대됐다. 이에 대학신문사 내부에선 학생 기자와 대학 당국 간의 편집권 문제가 불거졌고 외부에선 본교 ‘녹두장정’, 서울대 ‘자유언론’, 연세대 ‘민주횃불’ 등 학생들의 독자적 연재보도가 증가했다. 1981년부터 1983년까지 고대신문 기자로 활동한 이재준(경제학과 80학번) 교우는 “밤마다 신문사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주간교수와의 마찰로 기사는 번번이 의도대로 나가지 못했다”며 “때론 기사와 무관한 사진을 교묘히 넣는 방식으로 저항정신을 표출하곤 했다”고 말했다.

운동권 매체라는 비판도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1987년 6월 항쟁으로 표출되면서 80년대말 90년대초 대학신문은 학생 운동과 더불어 정점을 맞았다. 고조된 민주화의 열기로 편집권이 학생기자에 의해 발휘됐고 사회적 시국 현안을 다루는 기사·논평의 비중이 높아졌다. 한국언론연구원의 1995년 조사 보고에 따르면 대학 신문의 전체 기사 가운데 50.6%가 학외기사였으며 논단, 칼럼의 보도량은 사회분야 26.6%, 학내 25.9%, 정치분야 24.3%로 학내 문제보다도 정치, 사회현상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일각에선 대학신문이 본연의 아카데미즘을 등한시하고 학외의 정치성·이념성에 치우치는 현상을 우려하기도 했다. ‘전국대학기자연합’이 발행하는 기관지 <필맥>은 1992년 1월호에서 ‘대학신문이 대중선전사업의 중심이 돼야한다’는 주장을 실었다. 특히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도 1996년 한총련 주도의 폭력 농성 시위인 연대사태가 발생하는 등 운동권의 과격한 투쟁이 이어지면서 학생 운동에 대한 대중의 공감대는 점차 줄어들었다. 운동권 논리를 투영하는 매개로 인식되던 대학신문도 이 무렵 학내구성원으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 제기돼 온 대학신문의 위기는 2000년대에 한층 더 뚜렷해졌다. 대학신문이 대학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인터넷, 디지털 기술의 보급, 취업 중심의 관심사, 학생 기자의 저조한 참여율 등으로 감소하고 있다. 2001년 학생기자로 활동한 중대신문 박철호 간사는 “2004년부터 2010년 사이에 학생기자 지원률이 1대 1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대학신문이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며 “대학생의 개인주의 성향, 활자신문에 대한 무관심,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커진 것이 주요한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늘날 학생들은 학교의 소식을 포탈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손쉽게 접하고 있다. 대학신문의 정체성 문제는 학생 기자 사이에서 논의될 뿐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위기 속에 홀로 남은 대학신문은 여전히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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