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르타 절벽의 일몰 / 최준영

  웅크리고 있던 거리가 척추를 펴고 일어서는 시간 포르노 테잎처럼 깔린 타일바닥을 걷는다 가로등에 기대어 택시를 부른다 고무냄새 나는 좌석에 앉는다 어깨를 미끄러뜨린다 머리를 떨군다 눈을 감는다 도서관에서 펼친 어느 화가의 화집 속 암석바다를 떠올린다 거대한 바다짐승의 식도를 타고 미끄러지는 꿈을 꾼다 짐승의 뱃속에서 깜빡이는 초침의 발자국소리와 스케치하는 모네의 기침소리를 듣는다

  파도가 매서운 조각칼을 들고 달려드는 세계 거대한 힘의 파장이 새겨놓은 섬세한 표정들 기침의 각도만큼 가파른 솜씨로 깎아놓은 절벽 그 가장자리를 따라 영감(靈感)의 뼛조각들이 나뒹구는 곳 수 톤의 물덩어리가 둔한 몸짓으로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초침이 치는 파도의 간격마다 무수한 지느러미들이 돋아나고 사라진다 뒤섞이고 찢어진 바다, 화가는 안개 낀 눈으로 무얼 보고 어디를 그리고 있나 에트르타의 절벽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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