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0일부터 6일간 본교 법학관 신관에서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최장집 교수, 정경대 정치외교학과)주최로 제3회 한국민주주의 특강이 진행됐다. 이번 특강에서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비판적 접근과 새로운 모색>이란 주제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에 대해 여러 각도로 조명해 보고 이에 따른 문제와 해결 방안을 알아본다. 이번호에서는 김우창(문과대 영어영문학과)명예교수의 특강내용을 통해 현재의 정치와 사회 문화 상황을 진단해 본다.

(1)김우창 - 정치변화의 이상과 현실 

(2)임희섭 - 한국사회의 시민성과 한국 민주주의, 한국 시민사회운동과 한국 민주주의

(3)최장집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한국민주주의의 제도 디자인

현대사회는 이념적 소산이다. 사회는 공동의 삶의 기본 전제가 무엇인가사회의 과제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합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회에서 자기 이해의 기초가 된다. 이 이해가 없이는 모든 사회행동은 혼란과 갈등에 빠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의 현재의 상황이나 미래의 방향에 대한 인식은 극히 불분명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책임의 많은 부분은 누구보다도 정치지도자들에게 있다. 사회의 자기이해는 정치적 수사와 이데올로기보다는 정책의 일관성과 현실수행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해 그들은 사회의 자기이해에 포괄성을 부여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실을 지배하는 이념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검토하는 일이다. 이것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이 허용돼야 한다. 이것은 정치문화 그리고 문화일반의 합리성을 견제하는 일이다. 이번의 강의는 이러한 문제들을 의식하면서 오늘의 정치와 사회문화의 상황을 간단히 진단해 본다.
한국은 근대국가 성립의 두 가지 요건인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을 동시에 수행한 세계의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지만 민주주의 신장 면에서는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이 현재와 같은 혼란을 겪는 이유는 충분한 회고와 전망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역사적 위치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최근의 한국사는 혁명적 정열에 의해 움직여 왔지만 이제는 조용한 이성적 정열로 전환돼야 한다. 민주화를 이룰 때까지 많은 사람들을 움직인 것은 혁명적 정열이다. 사회적 혁명 정열의 의지가 사회 변천의 원천이며, 계속적인 변천은 필요하다. 그러나 혁명이 사람들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혁명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이 있다. 혁명적 정열이 지속됨으로써 사람을 위한 혁명이 변질되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혁명적 정열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기본적인 에너지가 될 수는 있지만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에너지를 규칙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와 법의 힘을 빌려야 한다. 입법은 곧 영구혁명이다. 이런 강제적인 방법을 이성적 정열을 통해 수행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이해다. 이러한 현실 측정은 정치 행동의 기초이며 이를 위해 이성적 토의가 필요하다. 그것은 사실 존중과 정직성의 문화를 전제로 한다. 민주주의는 타협과 합의, 이성적 토의, 법과 제도를 비롯한 정치 행동의 절차를 중시한다. 결과적으로 현 시점에서의 현실적 대안으로는 하버마스의 ‘절차적 인민주권’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모순된 두 가지 요소인 자유와 평등을 추구한다.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부르주아 자본주의이고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이상이다. 민주주의의 모순된 두 가지 요소를 추구하는 것이 ‘절차적 인민주권’이며 이는 평화적인 민주적 토의와 절차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갈등들을 인정하면서  다원적인 원리에 따라 갈등을 통합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원리와 질서를 말한다.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한국의 과제는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보장이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대중적,혁명적 정열로 이뤄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적 생존의 권리를 주는 복지 사회의 건설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복지사회가 국가의 목표가 돼야 한다. 복지국가는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전제로 하지만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갈등관계에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의 삶 보다 경제 발전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정부는 복지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법과 제도를 통한 후견인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복지가 가능한 경제 부하능력을 파악하고 복지의 필요와 사회적 균형에 대해 사실적 검토를 해야 한다. 혁명에 있어 의식을 향상시켜 선전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냉혹한 현실적 판단을 바탕으로 법과 제도를 통한 복지국가를 건설하고 복지체제를 발전시켜야 한다. 복지는 인간적 삶의 조건의 사회적 확보로 해석돼야 한다. 의식주의 기본적 확보로부터 시작해 인간적 삶의 실현에 필요한 사회적 조건의 조성 까지 확대해 생각될 수 있다.

외부적 요인들의 좋고 나쁨을 가리기 전에 우리는 현재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는 외부적인 조건들을 날씨에 비유해 볼 수 있다. 날씨에 대한 반응으로 좋고 나쁨의 감정이 있을 수는 있어도 이에 대해 어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보다 어떻게 장비를 갖추고 대비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또한 너무 많은 것을 날씨 탓으로 돌린다면 숙명론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미국의 패권주의와 자본주의, 남북통일의 문제도 외부적 조건으로 인식하고 좋고 나쁨을 가지고만 판단해서는 안된다.

현실의 외부적 조건들로는 자본주의와 환경, 이라크 전쟁, 남북관계를 들 수 있다.  
자본주의와 환경과 관련해 앤서니 기든스는 미국이 패권주의라 부르는 것은 과장이며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만큼 강하지 않다고 말했다. 세계 자본주의체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체제이고, 미국을 넘어서는 체제이다. 또한 이라크 전쟁은 오늘날 세계질서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세계질서의 위기를 나타낸 사건이다. 전쟁은 기피해야 할 분쟁 해결의 수단이며 최후의 수단이다. 정당한 전쟁의 이유는 있을 수 있으나 정당한 전쟁은 있을 수 없다. 또 다른 외부적 조건인 남북관계에서는 비공개적 측면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것이어야 하며 분명하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통일이 정치적 목적에 이용돼서는 안된다. 남북문제는 대중이 참여해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분명하고 명확한 목표와 정책을 보여줘야 한다. 남북관계 또한 미국 패권주의와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부시정부의 세계전략은 군사력을 중시하는 것이고 이것이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이다. 한총련의 장갑차 시위도 합법적이지 않은 위험한 행동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한미관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시위기 때문이다. 한총련이 평등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 뿐만 아니라 북한에게도 경고를 해야 했다.

정당성이 있는 정권도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고 나쁜 정당성을 가진 정권도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미국 패권질서와 관련해 이라크 전쟁이 어떠한 정당성을 인정해 줄 수 있는지 정치질서의 정당성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하버마스가 코소보 전쟁과 걸프전에서는 전쟁을 지지했지만 이라크 전쟁은 지지하지 않은 이유는 정당성과 명분은 있어도 헤게모니적 일방주의가 문제시 됐기 때문이다. 똑같은 명분이 있어도 미국과 영국은 보편적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에 불과하다는 평가이다. 정당함을 도덕적인 이유로 해서 다른 국가를 침공하는 것은 타협과 화해의 가능성을 축소하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인권을 도덕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고 법적인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스모폴리탄으로 인해 세계질서가 성립돼 가고 있지만 그러한 질서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유럽 뿐이라고 주장한다. 유럽이 이룩한 사회복지국가와 경제적 풍요가 국제질서를 형성할 수 있는 중요한 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버나드 루이스 교수에 의하면 이슬람과 서방세계의 갈등은 이슬람 사회의 근대화 실패에 그 원인이 있다. 한때 최고의 문명이었던 이슬람은 서방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경멸하게 하였고 이것이 과학기술과 민주주의의 낙후를 가져 왔다.

서방의 사회학자들은 20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로 인해 자유와 평등 그리고 우애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세계가 물질적 요건의 충족 이후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일지라도 물질주의는 제한된 것이라야 한다.

종교적 금욕주의는 단순히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 사는 생물체의 삶의 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김우창 교수는 …
△1937년 전남 출생
△1954년 광주고 졸업
△1958년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1961년 미국 코넬대 대학원 영문학 석사
△1963년 ~74년 서울대 영문과 교수
△1975년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 문학 박사
△2000년 ~2003년 고려대 대학원장
△1974년 ~고려대 문과대 영문학과 교수
△1993년 ~비평이론학회 회장
△1997년 ~도시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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