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은 역사적 가치는 물론 미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서울의 중요한 상징이다. 아픈 근현대사를 거치며 잃어버린 성곽을 살리기 노력이 이어져 올해 5월 남산 한양도성 성곽 2단계 구간과 2011년 10월 월암근린공원 한양도성 구간이 복원됐다. 남산 한양도성 성곽 2단계 구간과 월암근린공원 한양도성 구간을 방문했다.
남산공원을 측면에서 두르듯 서있는 한양도성은 백색 위용을 뽐냈다. 복원된 239m의 성곽 구간을 따라 걷다보니 남산 일대의 크고 작은 빌딩이 한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 앵글 안에서 성곽과 그 너머 시가지의 빌딩이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조화롭게 연출해냈다.

성곽은 문화재적 가치를 넘어 시민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이원진(남·47세) 씨는 “공원과 성곽이 잘 조성돼 있어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말했다. 주변에는 운동복 차림의 아주머니들이 눈에 띈다. 구명자(여·52세) 씨는 “성곽 산책로가 운동하기 좋아 자주 찾아온다”고 말했다.

이번에 복원된 남산 한양도성 성곽 2단계 구간은 일제가 조선신궁을 세우기 위해 허물었던 성벽을 다시 세웠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남산 한양도성 성곽 복원은 총 3단계 계획으로 구성됐다. 1단계 구간은 아동광장 주변 84m로 2009년 7월에 복원을 완료했다. 3단계 구간은 2015년까지 나머지 447m 성곽을 복원할 계획이다.

백범광장을 가로지르는 109m의 구간의 성곽은 훼손이 심해 미처 복원하지 못했다. 대신 화강석을 광장을 가로질러 선처럼 길게 놓아 성곽을 형상화했다. 형상화란 현실적으로 복원이 어려운 구간의 경우 도로의 상부나 하부에 성곽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형상화는 바닥에 성곽선을 남기는 하부형상화와 육교 형태의 성곽을 쌓는 상부형상화로 구분된다. 백범광장에 위치한 관리안내소 호현관은 성곽 순례에 관한 사진과 정보를 담아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성곽에서 내려와 아래로 난 산책로를 걷다보면 성곽의 축조양식이 확연히 달라지는 지점이 눈에 띈다. 태조 연간에 축성된 성곽을 세종 때 보수과정을 거치며 혼재된 양식 그대로 복원했기 때문이다. 태조 연간의 성곽은 투박하게 다듬은 막돌을 사용해 밑에서 위로 갈수록 면석크기를 줄이는 방식으로 쌓는다. 세종 대에는 보다 정돈돼 아래는 큰 돌을 장방형으로 다듬고 위로 갈수록 규격이 작은 화강암을 쌓아올렸다. 역사의 흔적을 뒤로 한 채 내리막길을 걷다보면, 성곽 아래 바람에 흩날리며 늘어선 강아지풀과 크고 투박한 돌이 자아내는 가을의 운치를 감상할 수 있다.

월암근린공원 구간은 남산 한양도성 2단계 구간에 한 발 앞서 복원이 완료됐다. 근린공원의 한양도성은 134m로 타 구간에 비해 짧은 편에 속한다. 한 바퀴 도는 데 10분 남짓 걸리는 작은 공원은 운동기구 몇 가지와 벤치를 단출하게 갖춰 근처 시민들이 가볍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공원 한편에 놓인 계단을 따라 성곽에 오르면 종로의 야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남산 한양도성 2단계 구간과 같이 월암근린공원 한양도성도 전체적으로 세종 대의 정갈한 양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 성곽의 가운데 밑단 지점은 막돌을 쌓고 빈틈이 작은 돌로 메운 점이 눈에 띈다. 

짧은 성곽 순례였지만 대도시 서울의 한복판에서 600여년 견뎌온 역사를 체험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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