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필두로, 우리 시대의 새로운 화두는 ‘힐링’이 되었다. 올해가 시작될 때에도 ‘힐링’을 외쳤는데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도 그 외침은 메아리처럼 여전하다. 소위 청춘으로 대표되는 20대는 ‘힐링 열풍’의 주 고객층이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해도 20대는 언제나 존재했다. 하지만 유독 요즘의 20대가 아프고, 연약하며, 쉽게 상처받고, 누군가의 토닥거림 없이는 홀로 설 수 없어 보이는 건 왜일까.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유명 대형 서점 에세이 코너엔 힐링 서적이 가득하다. 어쩌면 우리는 이 ‘힐링’이라는 말이 주는 달콤함에 취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유명한 서울대 김난도 교수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아프니까 청춘이고, 이 명제 속에는 청춘은 당연히 아프다는 전제가 따른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렇게 아프지 않다. 누군가의 ‘힐링’없이는 제 구실을 못할 것처럼 나약하지도 않고, 꿈 없이 방황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상처받은 청춘도 아니다.

얼마 전 영화 <화차>의 변영주 감독이 사회에 ‘힐링’의 만연을 지적하며 힐링 서적 류의 에세이를 ‘쓰레기’라며 날 선 비판을 했다. 이에 김난도 교수가 트위터로 변 감독에게 항의하고, 결국 변 감독이 발언의 수위를 조절하며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를 지켜본 일부 네티즌은 김 교수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하면서 왜 한 번도 흔들려보지 않은 사람처럼 발끈 하냐고도 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아픈 청춘은, 청춘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 힐링은 그만하면 됐다. 물론 청춘이기에 아프고 때로는 지독하게 앓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청춘은 그렇기에 빛나는 것이다. 밍숭맹숭한 영화보다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영화가 명작이 되는 법이다. 청춘은 더 자신 있고 당당하고 즐겁게 자신의 길을 걸을 필요가 있다. 그건 작은 용기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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