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취업 N수생’이다. 작년 내로라하는 대기업과 공기업에 원서를 내밀었지만 완전히 참패했다. 졸업을 미루고 다양한 스펙을 장착해 올해 상반기 채용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눈을 낮춘 하반기 채용마저 줄줄이 낙방하니 그저 절망적이기만 하다. 하지만 이대로 졸업하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학교를 떠나진 못하겠다. - 김인호(가명, 문과대 사학05)
나는 곧 학교를 떠나야 할 졸업예정자지만 이를 미룰 생각이다. 무난한 학점, 평범한 공인어학점수를 가졌지만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면 이 정도론 한참 모자라다는 걸 안다. 주변엔 나처럼 취업 때문에 졸업을 미루는 친구들로 넘쳐난다. - 이예지(과기대 식품생명08)
대학은 이제 더 이상 4년제가 아니다. 이들이 졸업을 미루는 이유는 취업 때문이다. 학교 도서관과 면접장, 스터디를 전전하는 대학 5학년, 6학년생들이 늘고 있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대학생 4학년을 22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명 중 3명꼴로 ‘졸업을 연기했거나 연기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취업을 못하면 학교도 못 떠난다
취업준비생들이 졸업하지 않고 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이 대학 졸업자보다 졸업예정자를 우대한다는 인식이다. 한국취업컨설턴트협회 김운형 대표는 “같은 나이라도 졸업생보다 재학생이 우대받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기업은 구직자 신분으로 보낸 졸업생의 공백 기간을 안 좋게 보는 경우가 많고 ‘졸업반 때 이미 한 번 탈락한 사람’이라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토지주택공사 관계자는 “무조건 채용에서 졸업자를 홀대하는 건 아니다”라며 “능력이 충분히 되고 공백 기간에 다른 경력을 쌓았으면 상관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졸업하고 나면 취업이 힘들다는 인식은 이미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취업에 영향을 줄 작은 요소에도 전전긍긍하는 취업준비생들은 당연히 졸업을 미룰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구직자의 심리적 불안감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실업자인 자신에게 쏟아질 사회적 시선은 졸업을 미루는 큰 이유가 된다. 박진호(가명,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05학번) 씨는 취업준비생 시절 7군데에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여의치 않자 졸업을 미뤘다. 그는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졸업하면 바로 백수 취급을 면치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대생이라고 예외는 없다
졸업을 연기하는 이른바 NG(No Graduation)족의 출현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특히 2008년부터 경기불황이 극심해지며 NG족들은 대학가의 당연한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졸업을 연기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다 보니 최근 몇 년간 연세대, 경희대를 비롯한 상당수 대학은 일정 금액만 내면 졸업요건을 갖췄어도 재학생의 신분을 주는 ‘졸업연기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들 학교의 경우 보통 졸업유예를 신청하면 신청학점에 따라 50~60만원부터 전액까지의 등록금을 내고 최고 10학기까지 졸업연기가 가능하다.
본교는 졸업연기제를 운영하지 않아, 본교생들은 ‘전공필수나 핵심교양 중 한 과목을 F학점을 맞는’ 편법을 택하거나 졸업에 필요한 최소 학점을 채우지 않기도 한다. 수료생의 신분만을 유지하기 위해 학점은 다 채워 놓고 졸업요건인 논문이나 영어성적을 제출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취업 준비 때문에 10학기 째 학교를 다니고 있는 고진현(가명, 문과대 영문06) 씨는 “주변 친구들 중 제때 졸업한 친구들은 열에 두세 명 정도”라며 “졸업요건을 미달시키려 영어성적을 제출하지 않는 등 여러 편법을 쓰는 건 이젠 흔한 일이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자들의 졸업소요기간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본교생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자신에게 기대가 큰 학생은 취업시장에서 쉽게 눈을 낮추지 못한다. 졸업을 유예해 취업준비기간까지 길어지기라도 하면 ‘그래도 내가 시간과 돈을 이만큼 투자했는데…’, ‘명문대학까지 나왔는데…’란 생각에 쉽사리 학교 문을 나가기 어렵다.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졸업연기제와 같은 학교의 제도가 취업준비생의 부담을 덜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계책일 뿐이고 궁극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졸업을 미루게 하는 사회 분위기와 취업 준비생들의 왜곡된 인식에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점점 심화되는 경제난과 더불어 안정되고 좋은 직장, 학생 신분 유지를 통한 ‘리스크 회피’만을 고집하다 보니 한창 일할 젊은 인력들이 학교를 떠나지 못한다는 것. 한국취업코칭센터 김호종 대표는 “차별성을 두지 않고 단지 남들만큼 하기 위한 졸업미루기는 별 효과가 없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최인찬(공과대 산업경영공학부) 교수는 “비단 학생들만의 탓은 아니다”라며 “학생들에게 주체적인 직업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대학 교육의 체질 개선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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