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82조에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部署)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는 대통령기록 생산‧기록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故 노 전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하는 듯한 발언이 담긴 ‘노무현-김정일 대화록’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대통령기록물에 관심이 집중됐다. 대통령기록물제도를 둘러싼 정치권의 거듭된 논란으로 △한국기록학회 △한국기록전문가협회 △한국국가기록연구원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참여연대 등 기록관리학계와 관련 시민단체가 10월 30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긴급토론회 및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병우 한국기록전문가협회장은 “최근 서해북방한계선(NLL)과 대통령기록을 둘러싼 정치권 논쟁을 보니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일부 정치권과 언론계는 눈앞의 이익을 추구해 국가에 장기적 손해를 끼치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기를 바란다”며 대통령기록이 정쟁의 수단이 되는 것을 비판했다.

▲ 10월 30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록관리학계와 관련 시민단체가 대통령기록에 관한 긴급 토론회 및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통령지정기록제도와 의미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2007년 제정되면서 대통령기록관에서 대통령 관련 기록물 수집을 담당하게 됐다.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은 청와대 내부가 주였으나 법 제정 후 대통령 비서실, 대통령 경호실, 대통령직속위원회로 확대됐다.

대통령기록물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지만 공개여부 분류 시 비공개로 지정된 ‘비공개대통령기록물’은 생산연도 종료 후 30년이 경과하면 공개해야 한다. 대통령기록관리법 제4장 제16조에 따르면 ‘대통령기록관장은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이관된 날로부터 5년이 경과한 후 1년 내 공개 여부를 재분류하고 첫 번째 재분류 시행 후 매 2년마다 공개여부 전문위원회 심의를 거쳐 공개 여부를 재분류’해야 한다. 조영삼(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매 2년마다 재분류라는 것은 가급적 공개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보호라는 이면에 공개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비공개 기록물 중에서도 보호조치가 필요해 추가된 것이 ‘대통령지정기록물’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에 해당하는 기록물은 열람‧사본제작 등이나 자료제출 요구가 안 되는 보호기간을 각 기록물마다 정할 수 있다. 보호기간은 15년 이내이며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록물은 30년 범위 이내로 대통령령에 따라 보호기간 지정이 가능하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보호기간 중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 경우 △관할 고등법원장이 해당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발부한 영장이 제시된 경우 △대통령기록관 직원이 기록관리 업무 수행 상 필요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의 장의 사전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열람, 사본제작, 자료제출이 가능하다.

2007년 제정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으로 인해 참여정부는 역대 대통령 기록물 중 가장 많은 대통령 기록물을 이관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는 대통령기록물을 후세에 남기기 위한 보호조치이다. <국가기록백서(2007,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대통령기록물은 일정기간 열람 및 자료 제출 등을 못하게 하는 보호장치의 부재로 인해 중요한 대통령 기록물일수록 당해 대통령 임기 말에 무단 유출되고 파기되었던 것이 사실이다’라고 지적한다. 이영남 전 국가기록원 학예연구관은 “대통령기록물을 후세에 남기는 것은 그 자체가 국가이익”이라며 “가장 많은 대통령기록을 이관한 참여정부의 사례로부터 장단점을 찾아 신뢰할 수 있는 대통령기록물 이관문화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기록은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10월 8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故노무현 前대통령이 김정일에게 NLL을 포기하는 듯한 발언이 담긴 비공개 대화록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여‧야당의 논란을 일으켰고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폐기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10월 29일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담록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공개는 거부했다. 논란이 되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관련 대통령기록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접근이 제한된다. 조영삼 교수는 “정상회담 관련 기록이 대통령기록관 뿐만 아니라 국정원, 통일부 등 관련 기관에서 보호대상 대통령기록과 비밀기록으로 존재할 것”이라며 “참여정부 대통령기록은 어느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므로 폐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은 “정문헌 의원은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불리할 것을 알면서도 기록을 남긴 것에 대해선 어떤 정치권도 노 전 대통령을 비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비공개 대화록 논란으로 인해 보호대상 대통령기록의 선정이 국민의 알권리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새누리당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조 교수는 “보호대상 대통령기록에 접근할 때 필요한 국회의 재적 의원 의결 수를 2/3에서 1/2로 낮춘다면 접근이 쉬워지면서 보호라는 제도의 의미가 없어진다. 때문에 이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영남 학예연구관은 “알 권리라는 것은 기록이 있기 때문에 실현되는 것”이라며 “보호조치가 마련되지 않아 전직 대통령들이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현실적 조치로 마련한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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