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법이 화제다. 최근 주요 포탈사이트 게시판에 난민법 반대 서명운동이 펼쳐졌고,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반대 서명에 동참하였다. 이들이 주장하는 난민법 반대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난민법이 통과되면 성폭력과 같은 범죄가 늘어날 것이다. 둘째, 난민법으로 인해 외국인노동자들이 다량 유입돼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다. 셋째, 자국민에 대한 복지혜택도 충분하지 않은데 난민 신청자에 대한 생계비 지원 등의 혜택은 시기상조이고 예산낭비이다. 넷째, 난민과 같은 후진적인 사람들을 유입하는 것이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먼저 이러한 주장은 난민법과 난민수용의 실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다. 한국이 난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1992년 이래 현재까지 우리 정부에 의해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총 300명을 넘지 않는다. 난민법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이 숫자는 급격하게 늘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체류 외국인 중 극소수에 불과한 난민이 외국인범죄나 일자리문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우려에 불과하다. 

새로운 난민법은 난민신청자에게 생계비를 지원하거나 신청 후 6개월이 지난 때부터 취업을 허가할 수 있음을 규정하였다(난민법 제40조). 원칙적으로 외국인은 대한민국에서 취업을 할 수 없고, 예외적인 경우(예컨대 투자비자 혹은 유학비자 중 일정기간 아르바이트)에만 취업이 허가된다. 새로운 난민법 조항을 체계적으로 해석해보면 난민지위를 신청한 사람은 생계비를 받을 수 있지만, 신청 후 6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취업할 수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신청자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여야 한다. 따라서 일반적인 경우 생계비의 지원은 최대 6개월에 그칠 것이므로 난민신청자의 복지에 많은 예산이 소모될 것이라는 추측은 타당하지 않다.

난민법의 반대 주장을 보면 ‘인권’과 ‘이주’에 대한 편협하고 왜곡된 시각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사실 박해를 피해 도망 오는 사람들이 반드시 한국을 택할 필요도 없고, 이들에 대한 보호가 국가 차원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권에 대한 보호와 증진은 기본적인 국가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이제는 일국가 차원을 넘는 전세계적인 의무로 자리매김하였다.

이와 같이 난민에 대한 보호를 우리의 의무로 인정한다면 왜 우리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고 우리에게 부담만을 주는 난민을 받아들이고 보호하여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난민의 문제를 경제적 논리로 이해하여서는 안 되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경제적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추방할 수 있는가? 인권의 시각에서 이들과 난민 문제는 큰 차이가 없다.

혹자는 장애인·노약자와 난민은 국적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문제라고 주장할 수 있다. 여기서 이른바 ‘이주’의 시각이 등장한다. 사실 난민법을 반대하는 주장은 반이주·반다문화 주장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제노포비아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순혈주의 민족 국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가 개발도상국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선진국으로 이주하였듯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외국인 유입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외국인과 자국민이 사회 속에서 공존하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외국인문제는 결국 이들을 어떻게 대우하여야 하는가의 문제로 치환된다. 문화다양성의 지향은 현실적 선택일 뿐만 아니라 통합을 위한 당위이다. 그리고 국적을 떠난 동등한 대우와 타문화에 대한 배려는 통합의 선결적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 난민의 경우 박해라는 타율적 동기에 의해 한국을 택한 점에서 이주민과 차이가 있지만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이주민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난민법은 난민보호의 국제적 기준은 난민지위협약의 국내이행입법일 뿐만 아니라 그간 기형적으로 규율되어온 난민관련 제도를 개혁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난민법에 대한 근거 없는 반대보다는 인권과 이주의 시각에서 난민문제, 나아가 외국인 일반의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희망법 김동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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