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치에선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기회가 폭 넓게 보장받아야 한다. 따라서 국민의 주권행사 내지 참정권행사의 의미를 지니는 선거과정에의 참여는 원칙적으로 자유롭게 행해지도록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우리 헌법의 통치구조에서 선거제도는 역시 국민의 주권행사이자 국가권력의 창출과 정당성을 국민의 정치적인 합의에 근거하게 하는 통치기구의 조직원리이다. 따라서 선거에서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최대한 참여하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필수요소이다.

우리나라의 대선 투표율은 13대 89%, 14대 82%, 15대 81%, 16대 71%, 17대 63%로 계속 추락해 왔다. 총선·보선·지방선거 투표율이 이보다 훨씬 낮은 건 물론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정치적 무관심으로 인한 투표율 저하가 하나의 원인이지만 사회적·경제적 구조의 변화에서도 또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비정규직과 혼자 가게를 운영하기에 일과시간을 비우기 어려운 영세한 자영업자가 급증하였다. 정규직 회사원들도 근무시간이 길어지는 등 투표권 행사에 여러 제약을 받는 경우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런 사정은 한국정치학회가 제1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답변이 무려 64.1%에 달했던 것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선거를 포기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바빠서 투표를 못 했다’는 응답이 55.8%에 이른다는 것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투표율 추락에 대하여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투표율 제고를 위한 적극적인 제도적·정책적 방안 마련이 절실한 것이다.
국민의 투표율 제고를 위해 이미 지난 제19대 국회의원선거부터는 재외국민투표제가 도입되었고, 이번 제18대 대통령선거부터는 선상투표제도가 도입되면서 재외국민과 선원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현재 ‘통합선거인명부제’ ‘투표율 법정공휴일 지정’, ‘투표시간 연장’ 등의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투표율은 투표의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확장할 경우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그런데 전국 어디서나 가까운 투표장에서 투표하는 제도인 ‘통합선거인명부제’는 이번 제18대 대선에서는 물리적으로 실시하기 어렵다. 그리고 ‘투표율 법정공휴일 지정’은 제도 도입으로 미치게 될 사회적·경제적 효과 등에 대하여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안은 투표시간 연장이다. 일각에서는 투표시간을 연장해도 투표율이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실제로 그와 같은 결과가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투표에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 있는 국민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거나 영세 자영업자 등인 점을 고려하면 투표시간 연장으로 이들이 실제 투표에 참여할지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의 참여가능성은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이것만으로 후보자들은 선거 승리를 위해 이들이 원하는 정책을 약속하고 실현방안을 내놓을 것이다. 이들이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자체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들은 후보자들의 정책개발에서 소외되지 않게 된다. 표로 이어질 가능성만 있다면 표심을 잡기 위한 공약을 개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경제민주화가 사회적 화두이자 선거 후보자들의 핵심 공약이다. 경제민주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직접 당사자가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와 같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인 점을 고려하면 투표시간 연장의 문제와 경제민주화의 문제를 전혀 별개의 사안으로 볼 수도 없다.

투표율을 높이는 것은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굳건히 세우는 일인 동시에 그것은 선출된 후보의 대표성을 제고하는 길이기도 하다. 후보의 대표성이 높아지면 당연히 통치에도 안정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참정권의 실질적 실현을 위해 가능한 제도부터 하나씩 구현하는 것이 정치권이 수행할 최우선의 의무가 될 것이다.

박은태 법무법인 이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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