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6 15:12 (화)
[교수의서재]전태일의 삶과 죽음, 조영래의 글과 영원
[교수의서재]전태일의 삶과 죽음, 조영래의 글과 영원
  • 고대신문
  • 승인 2012.11.18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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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일준문과대 교수.사회학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에서 자신의 몸을 불살라 <근로기준법>을 화형에 처하며 전태일은 외쳤다. 그것은 결코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전태일은 1964년 봄, 16살 때부터 ‘시다’로서 평화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어 ‘미싱보조’가 되고 ‘미싱사’가 되었다. 자기 자신이 어려운 가정환경, 작업환경 속에 있으면서도 자기보다 약한 노동자들을 돌봤다. 버스비를 털어서 점심을 굶고 일하는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걸어서 집에 갔다. 1967년 2월 24일 재단사가 되었다. 그는 재단사가 되면 어린 여공들을 도울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렇지만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낮에는 재단사 친구들을 모아 ‘바보회’라는 조직을 결성하고, 밤에는 <근로기준법>을 공부했다. 1969년 여름 전태일은 평화시장 업주들에게 ‘위험분자’로 찍혀서 해고당했다. 그는 굴하지 않고 평화시장 노동실태를 조사하여 각계에 진정을 내기도 했다. 평화시장에서 쫓겨나 삼각산에서 막노동을 하던 1970년 8월 9일 전태일은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나는 돌아가야 한다./꼭 돌아가야 한다./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여기서 그가 “돌아가겠다”고 한 것은 ‘목숨을 걸고 돌아감’을 뜻했다. 그것은 타협 없는 투쟁, 한 인간의 모든 것을 거는 단호한 투쟁을 의미했다.

 대학시절 나를 가장 크게 각성시킨 책이 바로 <전태일 평전>이다. 대학교 2학년인 1983년 여름방학 때 이틀에 걸쳐 읽었다. 몇 번을, 합해서 몇 시간을, 울다가 읽다가 했는지 모른다.  이 책은 글이 아니다. 생명이다. 글자는 먹물이 아니다. 쓴 이, 써진 이의 피다. 피의 기록을 읽는 이의 몸에서 감동이 솟아나지 않는다면 과연 사람일까? 나는 이 책을 통해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점을 깨우쳤다. 이 책을 읽기 이전과 이후의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1983년에 처음 출판될 때는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이었다.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시작된 1991년 개정판에서야 비로소 저자와 주인공의 이름을 밝힐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는 개정판이 나오기 전인 1990년에 죽었다. 그는 1974년도 민청학련 사건 이후 수배상태에서 수삼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이 책을 썼다. 고 조영래는 “전태일의 죽음은 바로 인간답게 살기 위한 삶의 의지의 폭발”이라고 정리했다. 전태일의 거룩한 죽음이 있었어도,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이 없었다면 전태일의 행동과 사상이 그토록 또렷하게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조영래로 말미암아 전태일은 지금 여기서 여전히 청춘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꺼지지 않는 횃불이다. 청계6가에 가면 전태일 동상을 만날 수 있다. 환영받지 못했지만, 집권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통령후보도 찾았을 정도다. 1995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나왔다. 전태일의 동생인 전순옥이 2003년에 영어로 번역했다(A Single Spark: The Biography of Chun Tae-il). 전순옥은 올 4월 11일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되었다.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의 평전도 나왔다.(안경환, <조영래 평전>, 강, 2006) 비인간적인 노동착취가 지속되는 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노동현장의 수많은 전태일들, 그를 증언하는 수많은 조영래들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정일준 문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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