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
힘들었던 고3 생활을 끝내고 새내기 대학생의 기쁨을 미리 만끽하기 위해 찾아간 캠퍼스에서 복음주의 기독교 동아리를 만났다. 집요한 설득에 못 이겨 같이 성경 공부하던 어느 날 오후, 학교 광장 한 구석이 소란스러워졌다. 멀리 검은색 만장을 대나무에 매단 소수의 무리들이 보였고, 만장에는 조악한 글씨로 “박종철을 살려내라”고 쓰여 있었다. 잔뜩 찌푸린 겨울 구름 사이로 비가 내렸고 학교 건물들은 금새 칙칙한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아직 입학식도 안했건만 대학 생활이 더 이상 설레이지 않았고, 불길한 예감은 그해 내내 나를 짓눌렀다. 나는 겨우 18살이었고 세상은 나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지금 바로 결정해야 한다고 사납게 다그쳤다.

스카.
동아리 선배의 소개로 만난 그 아가씨는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아직 채 고등학생 티가 가시지 않은, 어색한 화장 뒤에서 수줍은 미소가 앞에 앉은 나까지 난처해질 지경이었다. 긴 생머리를 쓸어 올리던 중에 그녀의 이마에 희미하지만 작은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스카. 언제 생겼을까, 어떡하다가. 쓸데없는 상념이 잠시 머리를 스쳐갔지만, 고집스럽게 굳게 닫힌 그녀의 입술은 아마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다. 아픔은 지나갔어도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다. 희미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지워지지는 않는다.

인도.
1학년 작문 시간, 노교수는 지루하게 설명을 이어가다가 잠시 호흡을 멈추고는 뜬금없는 얘기를 꺼낸다. 뛰어난 재능으로 스승의 총애를 받던 제자의 이야기.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하고 모두의 주목을 받던 중에 갑자기 절필하고 인도로 선교 여행을 떠났다는 그 제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창밖을 지그시 바라본다. 안경 너머로 그는 창밖의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불현 듯 그가 궁금해지고 행여 잊을까 이름을 책 귀퉁이에 적어 놓았다. 김승옥. 집에 가는 길에 신촌에 들러 그의 책을 찾아본다. 한권 있단다.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데이트를 할 겸 극장에 갔다. 건축학 개론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는 잠시 침묵이 흐른다. 도대체 누구를 생각하느냐고 다그치는 아내에게 변명을 하려고 서두르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어색하다. 나는 아내를 박사 과정 중에 만났고, 그 땐 학부 시절 나를 거스르던 상처들이 더 이상 아프거나 하지 않을 때였다. 그래도 내 이마 한 쪽 구석에는 그 때의 흔적이 남아있던 것 같다. 스카. 변명하던 내 머릿속을 맴돌던 단어였다. 그 때 내가 샀던 책은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제1회 이상 문학상 수상 작품집이었고 수상자는 김승옥 이었다. <무진기행>, <서울의 달빛, 0장>, <서울, 1964년 겨울> 등이 수록되었고, 이 책은 그 뒤로 한참을, 밥 먹고 잠을 잘 때도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실험 생각만 하던 대학원 시절 내내, 내 침대 머리맡을 지키면서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나를 위로해주곤 했다. 몇 번이고 계속 읽다가 지루해질 때는 아무데나 펼쳐서 다시 읽고는 했는데, 그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전봇대에 매달린 전단지 속의 여자는 바람에 전단지가 나부낄 때마다 추워요 하고 말하는 듯했다 따위의 문장을 곱씹으면서, 평이한 문체 속에 더 이상 더할 것도 덜 것도 없는 완결성이, 아무 단어나 문장을 하나라도 빼면 전체의 조화가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구성이 점점 더 강해지는 느낌이었다. 저자 후기에 김승옥은 자신의 작품이 마치 술먹고 자신의 토사물을 확인하는 것과 같아서 부끄럽다고 실토하지만, 누군가에게 그것은 시간을 버텨내는 위로가 되기도 하였음을 그래서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전화.
수화기 너머로 정직한 젊은이의 목소리가 단호하다. 대학생이 꼭 읽어야 할 책을 꼭 추천해 주셨으면 하고 부탁드린다는. 교수인 내가 학생들에게 책 한 권쯤 권하는 것은 어쩌면 나의 직업적인 책임의 일부일 수 있다는 짧은 생각에 그만 예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말하는 순간 바로 후회를 직감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딴 건 없어. 하지만 이미 늦었다.  

도용주 과기대 교수·디스플레이반도체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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