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고, 남한의 27배(서유럽 면적과 비슷)나 되는 광활한 국토를 가진 카자흐스탄은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다. 그래서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중앙아시아라는 표현보다 ‘유라시아’ 라는 표현을 좋아하고 특히 카자흐스탄을 유라시아의 심장이라고 말하길 즐겨한다.

지금 세계 지도를 펼쳐 보거나 스마트폰의 지도를 통해 카자흐스탄을 보라.  이곳은 실크로드보다 훨씬 먼저 동서양을 연결했던 초원의 길의 중심무대였음을 알 수가 있다. 흑해 북안에서 발흥한 스키타이 유목민은 이 카자흐 초원을 지나 동쪽으로 말을 달려 신라의 경주까지 그 영향력을 미쳤다.  신라의 왕관과 금 장신구를 통해서 스키타이인들의 활동반경이 얼마나 광범위 했는지 알 수 있다.

고구려의 평강공주와 결혼한 바보 온달과 신라 김춘추의 호위 무사 온군해도 바로 중앙아시아의 옛 소그디아 왕국의 왕족과 혈연관계라는 주장이 최근 학계에서 제기된 바 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우리와 고대로부터 연관을 가진 이 지역은 소련의 붕괴 후 왕래가 가능해지자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를 당한 50만 고려인의 존재를 통해 다시금 우리와 가까워졌고 한국민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최근에는 석유와 우라늄 등 풍부한 자원과 우리 제품의 소비시장으로써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다.

이런 곳에 필자는 18년째 살고 있다. ‘Central Asia Marketing L.L.P'라는 회사의 대표이사이면서 ‘카자흐스탄 한인일보’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특히, 동포언론 ‘카자흐스탄 한인일보’는 1만명이 넘는 높은 1일 방문객 수를 자랑한다. 서버사용료를 인상하라는 압력(?)까지 들어왔을 정도로 인기가 크다. 필자가 카자흐스탄국립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알마티한글학교 교장을 수년간 역임하면서 카자흐스탄 한국어신문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 신문 발행의 동기가 됐다.

‘CAM L.L.P'는 ’방송통신로드쇼‘, ’비즈니스카라반‘ 등 국내기업들의 현지 진출이나 수출 촉진을 위한 전시, 시장 개척 행사 등을 하는 회사다. 현지어를 모르고 카자흐스탄에 오는 사람들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통, 번역, 시장조사 등을 해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됐다.

17년 전, 모 대학 박물관 학예연구원이면서 동시에 대학원을 다니던 필자는 ‘우리 삶의 원형질을 찾아서... ’ 라는 다소 무모한 계획을 갖고 안정적이고 미래가 보장되어 있던 현실을 박차고 고난이 예정되어 있던 카자흐스탄 행을 결심했던 당시가 기억난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 아니라 그 꿈을 위해 실행의 첫발을 내딛는 자의 것이다’는 말과 같이 안암골의 후배들이여, 마음껏 꿈꿔라!  단, 미주, 유럽, 동남아 등 기존 시장, 기존국가에만 관심 갖지 말고 중앙아시아에 관심을 가져보시길 권한다. 카자흐스탄은 우리나라의 미래와 같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카자흐스탄으로 간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

김상욱 '카자흐스탄 한인일보’의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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