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불거진 검사의 성추문 사건을 보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검사와 피의자 간의 대가성이 의심되는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점에서가 아니다. 이른바 ‘로스쿨 출신 검사’에 대한 차별성이 적나라하게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검사면 그냥 검사지, 로스쿨 출신 1기로 임용된 검사임이 부각되면서 이른바 출신성분이 다른 이들에 대한 검증론이 대두되고 있다. 무엇이 그리 아니꼬운 것인가. 4년간 법대를 다니고 그 후로도 3~4년 사법고시에 매달려 겨우 폐인을 면할 소시오패스 직전에 사시에 붙은 후 2년간 사법연수원에서 죽어라 공부해 우등성적으로 졸업해 갑중의 갑이라는 검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로스쿨 출신이 같은 직장동료로서 ‘검사’라는 타이틀을 다는게 배가 아픈가.

굳이 구분 짓는다고 하면 모 부장검사의 금품수수사건도 ‘사시출신’임이 부각되었어야 했을까. 우리사회의 지도층은 극도의 엘리트주의와 배타주의로 똘똘 뭉쳐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 국책경제연구기관은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시카고대 출신 박사가 아니면 왕따를 당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외무고시 합격자는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이 대세다. 성과와 자질이 아닌‘출신성분’으로 당락이 결정되고 주류 편입여부가 결정되는 사회, 우리사회 지도층의 현실이다.

아니, 이는 어쩜 지도층 뿐만이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사회적 현상이다. 때문에 사회인인 나도 때론 회의감이 들고,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지 않은 학생들도 회의감에 젖는 안타까운 현상을 목격하곤 한다. 필자가 워싱턴DC에서 대학원에 다닐 때 같이 살던 룸메이트의 남자친구는 목수출신으로 한 대학의 로스쿨에 다니고 있었다. 한국식 셈법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느날 물어보았다. 어쩌다 목수가 되었으며 왜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지 말이다. 그 친구는 내게 가구를 만드는게 좋아 목수가 되었는데 우연한기회에 봉사활동을 하게된 부랑자보호소에서 미국의 빈민문제에 대해 알게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법률자문을 하고 싶어 변호사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고 했다.

난 그때 로스쿨의 장점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되었다. 엄청난 편견인지는 모르겠으나 사회경험이 전무하고 책상앞에서 법전만 읽은 이른바 ‘똑똑한’ 친구들보다는 조직생활도 경험해보고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친구들이 법을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지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로스쿨을 도입하게된 이유 중에는 분명 이런 부분이 고려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특권의식, 엘리트의식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검사직과 같은 투철한 사명감과 청렴함을 요구하는 직업은 일정부분 그런 테두리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민의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의 쇄신을 얘기한다.

검찰총장이 사퇴하는게 능사가 아니다. 자체 자정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동료가 사시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홀대하고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성과가 말해주지 않는가. 배경과 성분이 아닌 다양성과 창의성, 사회계층간이동이 자유로운 사회, 한달 후 결정될 새로운 대통령에게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아유르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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