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어딜 가면 좋을지 막막할 때가 있다. 답을 얻기 위해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자신에게 맞는 여행지를 찾는다. 반면 떠나고 싶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다시 일상에 머무는 사람들 역시 여행 에세이를 읽는다. 마치 내가 여행지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며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이렇게 책을 통해 여행지를 직접 취재하면서 느낀 감상이나 얻은 정보를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여행 작가이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여행을 직업으로 하는 여행 작가들의 삶을 어떨까. 해외여행 작가인 고은초 작가, 국내여행 작가인 권다현 작가와 이시목 작가를 만나 여행 작가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 고은초 작가
<3650일 하드코어 세계일주>의 고은초 작가
21살, 지겨운 수업을 듣고 나오면서 우연히 보게 된 워킹홀리데이 포스터 한 장이 고은초 작가의 삶을 바꾸었다. 무작정 떠난 1년의 호주여행은 여행에 관심 없던 고 작가의 마음을 움직였다. 25살에는 소문으로만 듣던 세계일주 항공권을 이용해 1년 간 세계 일주를 떠났고 한국에 돌아와 직장에 취업했지만 여행의 후유증은 계속됐다. 29살에 권 작가는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남미로 6개월 여행을 떠났다. 고 작가는 시중에 흔한 여행 책은 여행한 사람의 모험담만이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여행 책은 독자에게 여행의 환상은 심어줄 수는 있지만 ‘나도 이렇게 떠날 수 있을까’하는 용기를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고 작가는 여행을 하면서 유난히 많은 일을 경험했다. 갖고 있던 여권과 지갑을 통째로 뺏기는 일은 다반사였고 영국으로 가기위해 탔던 비행기가 추락할 뻔한 적도 있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도 제가 독보적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고들 하세요(웃음)” 사건 사고와 슬럼프가 있었지만 여행이 주는 희열과 감동을 막을 순 없었다. “힘들어도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멋진 광경에 감동받으면 고난은 곧 잊혀져요. 이런 고난의 순간은 시간이 지나면 더 튼튼해지는 자양분으로 작용해요”

고은초 작가는 의사소통이 걱정돼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핑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여행에 큰 문제는 없고 현지에서 언어를 배울 수도 있다. 고 작가는 남미여행에서 스페인어를 배웠다. “생활의 불편보다 말을 하지 못하다보니 현지인들과 친구가 될 수 없어 느끼는 외로움이 엄청 컸어요” 고 작가는 여행지에서 현지의 본모습을 보려 노력하는 편이다. “가난한 나라의 몇몇은 관광객들이 가는 곳과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곳이 매우 양분화돼 있어요” 고 작가는 일부러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이나 숙소를 더 이용한다. “관광객으로서의 형식적인 환대를 받는 게 아니라 그 지역 사람들의 진정한 환대를 받으면서 친구도 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죠”

고은초 작가 역시 장기 여행을 할 만큼 집이 풍족한 편은 아니었고 공부를 하길 바라는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다. 긴 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여행의 후유증으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정신 차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봐요” 고 작가는 취업이나 스펙에 몰두하는 대학생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하는 일이 삶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도구가 맞는지 확인해볼 시간을 가져보세요. 좋은 직장을 왜 가져야 하는지, 돈을 왜 많이 벌려고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해봐야 해요“

▲ 권다현 작가
<내일로 기차로>의 권다현 작가
권다현 작가는 대학시절부터 여행 작가로의 삶을 늘 꿈꿨다. 하지만 기회는 직장생활을 하던 서른 살에 우연히 찾아왔다. 알고 지내던 선배 작가의 제안으로 고민 끝에 사표를 내고 여행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두 달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새벽부터 취재를 시작했어요. 2011년에는 힘들었지만 행복하게 쓴 저의 첫 책인 <내일로 기차로>을 냈어요” 기차여행에 관한 책을 쓸 만큼 권 작가는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버스나 자동차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수단에 불과하다면 기차는 플랫폼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여행의 한 과정인 것 같아요”

여행이 직업이 되면서 권다현 작가는 여행 방식을 바꾸었다. 개인적인 선호도에 따라 여행을 하지 않고 주변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제가 쓰는 한 줄 글 때문에 누군가가 길을 헤맬 수도 있으니 정확한 정보 확인도 해야 해요” 독자들에게 여행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개인적인 노력도 하고 있다. “오정희나 김훈 같은 훌륭한 문체를 가진 작가들의 글을 읽고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나 비유는 꼭 여러 번 필사하면서 제 것으로 만들려고 해요” 권 작가의 여행에서의 신조는 ‘공정여행’이다. 호텔이나 대형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는 가능한 지양하고 지역 게스트하우스나 로컬브랜드나 식당을 이용하는 것이다. “통영 동피랑마을의 공판장처럼 판매수익이 해당 마을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마련돼 있다면 반드시 그곳에서 단돈 천원이라도 쓰려고 해요”

권다현 작가는 여행 작가에 대한 환상만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어선 안 된다고 충고한다. 책 한권을 만들기 위해 작가가 쏟는 열정과 애정에 비해 현실적인 보상은 그리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출판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웬만한 직장인의 연봉을 한 두 달 만에 벌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 취재비용이 더 많이 드는 마이너스 출판이 돼요. 출판 자체보다 다양한 매체에 관련 글을 기고하면서 조금씩 경제적 기반을 닦아야 하죠” 권 작가는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숨겨진, 경제적으로도 소외된 아름다운 곳을 독자들에게 많이 소개할 계획이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끝도 없는 지평선을 눈과 마음에 담아오고 싶어요”   

▲ 이시목 작가
<내 마음 속 꼭꼭 숨겨둔 여행지> 이시목 작가
“얌전히 사무를 보거나 선생님이 되길 원하셨던 아버지는 여행 작가의 길이 위험하다고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여행 작가로의 삶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잡지사에 입사했던 이시목 작가는 잡지사에서 여행 관련 기사를 준비했던 것을 계기로 1997년부터 여행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프리랜서 여행 작가로 데뷔한 것은 2004년이다. 지금까지 2권의 책과 공동저자로 13권의 책을 냈다. 평소에는 여행을 다녀와 신문이나 잡지, 사보에 글을 게재하고 있다.

이시목 작가는 어릴 적부터 여행을 좋아했다. 자취를 시작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혼자 버스를 탈 수 있을 때부터 여러 곳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집과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 점차 먼 곳까지 다니게 됐죠” 좋아하던 여행을 직업으로 바꿀 만큼 이 작가에게 매력적이다. 이 작가에게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점이다. “자연 앞에 나 혼자 있으면 대상은 자연과 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좋아요”

여행지 취재의 기본은 사람이다. 이시목 작가는 여행지의 장소만큼 그곳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요시한다. “일부러 운동장에 찾아가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지역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취재를 하는 편이에요” 취미를 직업으로 삼으면서 생기는 고충도 있다. “가끔은 정말 여행가서 맘 편히 누워 책도 보고 싶은데 여행이 일이 되니 몸이 아프더라도 취재를 해야 할 때가 있어요” 고민 끝에 그녀는 1년에 한 두 번은 카메라를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을 떠난다. “예전에 여행을 좋아했던 감정을 그대로 가지기 위해서 하고 있어요. 이렇게 하면 일로서의 여행에도 활력소가 되고요” 소개된 여행지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인해 훼손되는 경우도 있다. 이 작가에게 마음 아픈 곳으로 기억되는 경북 청송의 주산지가 바로 그 예이다. “1995년에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주산지가 굉장히 좋았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풍경도 변하고 상해서 많이 안타까웠어요” 

여행 작가는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많은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여행하면서 돈을 벌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시목 작가는 사람들이 여행이라는 한쪽 면만을 바라본다고 말한다. “여행만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원고라는 결과물이 있어야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돼요. 독자들이 읽고 좋아할 원고를 써야 하는데 사람들은 원고에 대한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여행이라는 일부만 바라보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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