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를 강화하는 관련법 개정안이 곧 발의될 예정이다. 현행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은 발행 후 18개월 미만의 도서(신간 도서)에 대해 소비자 판매 가격을 출판사가 정하고, 서점 등 판매업체가 이를 준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듯이 매우 광범위한 할인이 이루어지면서, 정가대로 판매하는 서점이나 정가로 구입하는 소비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법에서는 명목상으로 정가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예외 조항이 많아서 입법 취지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즉 현행법에 의한 도서정가제에서는 18개월 미만의 도서라 해도 정가의 10% 기본 할인율에 판매시 마일리지 적용 등이 가능한 추가 할인율(판매 가격의 10%)까지 총 19%의 할인을 허용하고, 실용서와 초등 학습참고서는 정가 판매 대상에서 제외한다. 또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도서관, 사회복지시설, 군부대 등에서 도서를 구입할 경우에도 정가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렇게 정가제 적용 예외가 많다보니 ‘무늬만 도서정가제’, ‘골다공증 도서정가제’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올해 11월에 국내 최대 매장 규모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판매중인 국내도서 재고 약 43만 종 가운데 도서정가제 적용 대상은 12.8%에 불과했다. 이조차 19% 할인이 가능한 책으로, 도서정가제라기보다는 ‘도서 할인 촉진제도’임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신간 도서에 대한 명목상의 정가제 적용은 구간 도서(발행일로부터 18개월 이상 경과한 도서)의 과당 할인 경쟁을 부르는 ‘풍선 효과’를 초래했다. 50% 이상 할인은 물론이고, 1000원, 3000원 균일가 판매 등 도서정가제가 없는 나라보다도 심한 할인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구간 중심의 판매는 새로운 책의 출판을 감소시키는 역기능을 불렀다.

  일반 소비재와 같은 할인 경쟁은 자본력이 취약한 국내 대다수의 중소 출판사와 오프라인 서점의 존립 기반을 붕괴시켰다. 단적으로 1994년에 5683개이던 전국의 서점 수는 2011년에 1752개로 약 70%나 감소했다. 지역의 명망 있는 향토 서점들은 물론이고 대도시 유력 서점들까지도 속수무책으로 폐업으로 내몰려, 전국 읍면동 2개마다 1개의 서점이 있을까 말까한 수준이다. 여기에 국민 독서율 감소, 도서관 이용률 감소, 가계 도서구입비 감소 등 책과 독서에 대한 수요가 전반적으로 크게 줄어들면서 출판․독서 생태계가 황폐화, 사막화되는 형국이다.

  도서정가제는 과도한 시장 경쟁에 의해 책의 가격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최소한의 기반이다. 승자 독식이 아닌 저작, 출판, 유통의 다양성 보장을 위해 문화 선진국들이 특별법 등으로 예외 없이 도입하고 있는 제도이다. 현재 세계적인 출판시장을 가진 영어권을 제외한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 대다수 유럽 국가와 일본 등이 도서정가제를 철저히 시행함으로써 모국어의 지식문화 생태계를 지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나라 소비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책은 일반 소비재가 아닌 공공재에 가깝다. 그래서 부가가치세를 면제하여 10%의 할인 효과를 이미 부여하고 있으며, 각종 도서관을 통한 무료 이용을 보장하고, 언론은 공익적 측면에서 책 정보를 제공하거나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강조한다. 수도, 전기, 대중교통 등의 공공요금 기준 책정에 국가가 개입하고 보조까지 하는 것은 공공재의 경우 가격 경쟁의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는 출판사나 서점의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다. 보다 양질의 도서가 다양하게 발행되고, 보다 많은 신인 저자들이 책을 펴낼 수 있으며, 고래와 새우가 함께 숨쉬는 바다처럼 크고 작은 온․오프라인 서점들이 공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만들어지면 소비자 후생도 극대화될 수 있다. 독자를 위한 출판문화의 지속 발전, 거품 가격 없는 도서 구매를 포함한 독서환경 조성을 위해 제대로 된 도서정가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튼튼한 출판시장의 토대 없이는 지식기반 정보사회의 미래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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