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손유정 기자 fluff@kunews.ac.kr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개봉하고 있다. 영화 <남영동 1985>는 1985년 故 김근태 의원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2일 동안 겪었던 고문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흘렸던 많은 피는 시간이 흐르며 기억 속에서 흐릿해져갔다. 영화는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동시에 결코 반복돼서는 안 될 현대사의 오점을 보여주며 경각심을 일으킨다. 정지영 감독은 1998년 잠정적으로 활동을 중단한 이후 2011년 <부러진 화살>로 성공적으로 영화계에 복귀했다. 본교 언론대학원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던 정지영 감독을 만났다.

- <남영동 1985>를 만들게 된 배경은
“20년 전부터 그 시대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작년 12월 30일, <부러진 화살> 개봉을 20일 앞두고 김근태 의원이 돌아가셨다. 김근태 의원의 생애를 찾아보다 그가 직접 쓴 수기 <남영동>을 처음 접하게 됐는데, 수기에는 고문당한 내용이 절절하게 묘사돼 있었다. 영화화하기로 결심하고 고문 피해자들을 찾아 취재하며 만들기 시작했다”

- 김근태 의원의 이름을 김종태로 바꿔서 등장시킨 이유는
“군사독재의 폭압 속에서 고문은 한 개인만이 겪은 고통이 아니다. 고문 피해자들을 취재하면서 김근태 의원보다 훨씬 더 심한 고통을 겪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실명을 쓰면 김근태 의원 한 사람의 고통밖에 다룰 수 없기 때문에, 김종태라는 가명을 써서 고문 피해자 전체를 대표하도록 했다”

- 상영 내내 실제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영화에 몰입됐다
“관객을 극장 안에 22일 동안 고문당한 당사자와 같은 심정으로 가둬놓고 싶었다. 고통을 공유해서, 아픈 역사를 통해 이뤄진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했다. 지금은 민주주의가 훼손돼도 누군가 싸우겠지 혹은 괜히 나서면 손해라는 생각을 한다. 그 아픔을 겪는다면 결코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소홀할 수 없을 것이다”

- 사실적인 고문장면을 촬영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영화를 다 찍고 나서도 후유증이 한 달이 갔을 정도로 30년 영화 인생 중 가장 어려운 촬영이었다. 찍을 수 없는 것을 찍으려고 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고문 장면에서 배우 박원상(김종태 역)에게 못 참겠으면 몸부림으로 신호를 보내라고 했다. 얼굴에 고춧가루 물을 들이붓는 장면은 가장 길게 찍은 장면이었는데 코를 막고 세 번을 촬영했다. 나는 진짜 고문을 했고, 박원상은 진짜 고문을 당했다”

- 취조실에 쓰러져있던 주인공 앞에 가족과 함께 바닷가를 거니는 장면이 펼쳐진 의미는 
“위로와 하소연을 주고받을 인물도 없는 상황에서 고문당하는 당사자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다. 자기 이름을 말했던 후배를 욕하면서 자신도 고문에 못 이겨 선배들의 이름을 자백한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생각했을 아이와 아내, 초라하게 매몰되고 파괴된 현재 자신이 아닌 본래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 최근 정치영화가 많이 개봉되고 있다
“유행처럼 되는 것만 주의한다면 한국 영화계에는 꼭 필요한 일이다. 영화는 매체 중 가장 강력하다. 대부분 영상매체는 돈과 권력의 소유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많은 것을 숨긴다. 어느 곳에서는 그들이 숨기는 문제를 제기해줘야 사회가 환기된다. 원래 사회의 기득권 구조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정치영화가 흥행이 어렵다는 이유로 투자를 받기 굉장히 어려웠다. 정치영화가 점차 흥행에 성공하면 투자를 받는 것도 더욱 쉬워질 것이다”

- 정지영 감독의 20대는 어땠나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권위주의적인 사회였다.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수업을 잘 안 들어갔다. 어느 날 수업에 들어가니 교수가 출석을 제대로 안 한다고 뺨을 때렸다. 그렇지만 그 시절 우리는 기존 가치에 그대로 순응하지 않았다. 사회가, 선배가 하는 말이 옳은지 항상 의심하고 질문을 던졌다”

- 본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본 고대생은 어땠나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었다. 당시 총학생회에서 반값등록금 투표를 하고 있었는데 투표율이 50%가 넘으면 서울 시내 대학이 동맹휴강을 한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강의실에 학생들이 한 명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수업을 들어갔더니 학생들이 모두 앉아있어 깜짝 놀랐다. 이 학생들은 집에서 등록금 내는데 문제없으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말을 듣고 왔을 것이다. 기성세대가 만든 스펙, 학점과 같은 규칙을 아무런 의심없이 따르는 순치(馴致)된 모습이 많이 보였다”

- 요즘 20대는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
“본질적인 문제는 20대가 사회에 무관심한 것이다. 20대들은 왜 굶는 사람이 있고, 왜 자살하는 사람이 생기는지,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가 잘 작동되는지에 관심을 갖고 문제제기를 하다보면 정치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 20대가 영화 <남영동 1985>를 봐야하는 이유는
“현재 민주주의는 형편없다. 우리는 이상한 민주주의를 10년간 겪었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권력가에게 좌우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 영화를 만든 이유도 고생해서 이룩한 민주주의가 훼손돼도 가만히 있는 국민에게 문제의식을 느껴서다. 영화를 통해 4·19, 5·18 민주화운동을 일으킨 열정을 되살려 죽어있던 정신을 깨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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