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고려대학교 캠퍼스는 마치 한 마리의 호랑이가 태어나 성장하듯 외형적으로도 수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대한제국 시기 시작된 보성전문학교에서 이뤄진 민족사학의 정신은 1930년대에 인촌 김성수 선생을 비롯해 수많은 민중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안암골에 뿌리내리게 했다. 오늘날의 고려대학교 캠퍼스가 갖고 있는 공간은 어떤 의의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지를 조명해봤다.

캠퍼스 마스터플랜의 현재 상황
캠퍼스 공간은 학문을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캠퍼스 마스터플랜은 교내 건물의 보수와 신축을 통해 학업을 지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교육의 방향을 예측해 올바른 교육 실천이 이뤄지도록 돕기도 한다.

1930년대 보성전문학교 시기에는 건축가 박동진이 중세 유럽 대학의 모티브를 차용해 본교의 본관과 도서관(현 대학원 도서관)을 건립했고, 1946년 고려대학교로 승격된 후 서관, 강당, 교양관, 여학생회관, 이공대학 등을 신축했다. 1964년에 건축학과가 창설되고 이듬해 이정덕 교수가 건축학과의 첫 번째 교수로 임명되며 이후 2000년 전까지 故 박동진 건축가의 뜻을 이어받은 이 교수의 아이디어가 캠퍼스 공간의 마스터 플랜으로 구현됐다.

그가 고안해 낸 디자인은 본관과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캠퍼스 벨트화다. 본관과 서관, 도서관의 석조고딕양식을 중앙에 두고, 그 주변부는 콘크리트벽에 돌판을 붙이는 돌붙임양식, 그 바깥으로는 모더니즘을 표현해 외부로 뻗어나갈수록 건물의 현대화를 보여주고자 했다. 돌붙임양식은 리모델링(2000년) 전의 경영본관, 모더니즘양식은 학생회관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본교 캠퍼스 마스터플랜이 잘 진행되는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계획에 일관성이 없고 총장이 바뀔 때마다 건축의 경향이 바뀐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에 대해 김현섭(공과대 건축학과) 교수는 “강력히 추진했던 이 교수의 마스터플랜은 퇴임 이후 많이 약화되고, 다양한 의견들이 많이 제기돼 그의 아이디어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심우경 교수(공과대 환경생태공학부)는 “건물이 많이 세워졌는지는 몰라도 현재 교내 조경부분에서는 특별한 마스터플랜도 없다”며 비판했다.

캠퍼스 디자인의 전환점-백주년 기념 건축사업
백주년 기념 건축사업은 2002년 본관 앞 운동장을 철거하고 중앙광장을 신설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약 5년간 △백주년기념삼성관 △화정체육관 △LG-POSCO 경영관 △하나스퀘어 △녹지운동장 △창의관 △법학도서관 등 많은 건물들이 새로 세워졌다. 그중 가장 획기적인 사업은 중앙광장 건설이다. 시설부 김흥덕 과장은 “자동차를 모두 지하에 주차하면서 ‘차 없는 캠퍼스’로서 대학 캠퍼스 디자인에 새로운 흐름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중앙광장의 열린 공간적 이미지가 새로운 패러다임에 부합한다는 해석도 나왔다. 김현섭 교수는 “정문에서 봤을 때 가로로 트인 이미지는 지역사회에 열린 공간을 상징하며, 연세대의 세로로 긴 배치가 갖는 감추는 듯한 구조와 대비된다”고 말했다.

중앙광장 개발 사업에 이어 하나스퀘어 건설은 선도적인 시도였다고 평가받는다. 지상에서 하나스퀘어를 보면 유리로 둘러싸인 큐브가 주변의 석조 바닥재와 어우러진 모습으로 국내대학 중 처음 시도한 형태다. 김 교수는 “최근 이화여대의 상징적 건물로 손꼽히는 ‘ECC’도 본교 중앙광장이나 하나스퀘어를 어느 정도 벤치마킹했을 것이라 추측된다”고 말했다.

백주년 기념사업시기에 보수·신설된 건물의 외벽 자재로 화강암이 압도적으로 사용된 것도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경영본관을 비롯해서 우당교양관, 이학관의 외벽이 모두 화강암으로 보수됐다. 이에 대해 김 과장은 “같은 외벽을 사용함으로써 캠퍼스 전체에 통일감과 안정감을 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사진 | 김연광 기자 kyk@

조경관리는 방치한 건물 디자인의 불협화음
“본교 캠퍼스의 조경은 총체적으로 엉망이다” 박천호(생명대 생명공학부) 교수의 말이다. 체계적으로 계획되어 지어진 본교의 건물과 달리 교내 조경에 대한 관심은 미비한 상태이다. 박 교수는 “담당 관리자조차 조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조경이 방치돼 있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심우경 교수는 조경에 대한 캠퍼스 마스터플랜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다. 민족사학으로서 학교 건립 초기의 국내산 수목중심의 조경이 파괴되고 여기저기 수입산 식물들이 심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본관 앞 잔디밭은 원래 인촌 선생 때부터 우리나라산 들잔디를 심어 굳이 관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라는 튼튼한 잔디였다”며 “최근 사계절 푸른 잔디밭을 위해 관리하기 까다로운 양잔디를 심은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며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백주년 기념사업으로 심었던 일본산 철쭉은 추위에 약하고 소나무는 서울 기후에 맞지 않아 올 겨울에도 많이 죽어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박천호 교수는 쉴 공간이 없어 심리적으로 삭막함을 조장하는 캠퍼스를 비판했다. 박 교수는 “나무와 꽃이 주는 정서적 효과는 학생들을 비롯한 학교의 구성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학교 측에서 학생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을 주려는 배려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큰 녹지공간을 마련하지 않더라도 건물 주위 화단에 흙을 두툼히 깔고 꽃과 나무를 여럿 심어야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박 교수는 “새로 심는 것은 고사하고 관리가 안돼 나무가 벌겋게 달아올라 말라 죽는데도 학교 측이 손 놓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학교 당국은 잦은 건물 신축 공사로 조경에는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김흥덕 과장은 “신축건물 주변의 나무들은 아직 나무가 어려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고 본관주변의 나무들처럼 나무 주변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가지를 치는 등 나무를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물 하나의 외벽 디자인 양식이 혼재돼 부조화를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현섭 교수는 “이학관 리모델링을 하면서 석조고딕양식에 쓰이는 돌붙임 양식이 뜬금없이 붙어 있어서 이공계 캠퍼스만의 하이테크한 느낌이 인문사회계와 섞여 방향을 잃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려한 곡선과 직선의 모더니즘 양식을 갖춘 학생회관 꼭대기에 푸른 유리로 된 층을 덧붙인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건물과 주변이 조화 이뤄야
앞으로 고려대학교 캠퍼스가 건축 디자인에 있어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김현섭 교수는 인문사회계 캠퍼스와 자연계 캠퍼스가 개별적 노선을 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문사회계 캠퍼스의 해송법학도서관과 미디어관이 새로운 시도라는 의미가 있지만 일각에서는 주변 건물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본관과 중앙광장을 둘러싼 인문사회계 캠퍼스는 고딕풍의 전통적 분위기를 이어나가고, 자연계 캠퍼스는 조금 더 과감하고 혁신적인 구조물을 세움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심우경 교수와 김흥덕 과장은 “앞으로 논의될 마스터플랜에서는 캠퍼스 간의 공간 단절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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