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
지식의 상아탑으로 상징되는 대학. 대학 하면 곧잘 떠오르는 이미지는 웅장하고 높은 석조건물이다. 사실 본교뿐만 아니라 연세대, 이화여대, 경희대, 한양대 등 수많은 대학들이 석조 고딕 양식의 건축물을 가지고 있다. 현대적인 건축 양식도 많고, 르네상스나 바로크 건축 등 석조를 사용한 다양한 고전 건축 양식이 존재하는데 왜 하필 대학 건축엔 석조 고딕 양식이 널리 쓰이는 것일까.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옛 민립대학들이 많이 모델로 삼았던 영미권 대학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김현섭(공과대학 건축학과)교수는 “일제강점기 시대와 해방을 거치면서 설립된 우리나라 대학들은 롤모델로서 일본의 대학 대신 영미권 대학을 찾았다”고 말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미국에서는 ‘대학고딕양식(Collegiate Gothic Style)’이라 하여 예일대, 시카고대, 프린스턴대, 듀크대 등 이른바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영국 튜더양식의 건축물들을 건립했다. 이들의 근원을 더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16~17세기 영국의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의 튜더 양식을 본뜬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들의 최종적인 원형은 모두 중세시대의 고딕양식이다”며 “당시부터 시작된 학문의 신성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영미권 대학이나 우리나라에서도 고딕 양식을 차용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의 석조 고딕 양식은 다른 특별한 의미도 가진다. 당시 일제는 목조 건축이나 석조 르네상스 양식을 차용한 벽돌 건물을 주로 건축했다. 따라서 일제의 건축문화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건립된 대학의 석조 고딕 양식은 민족문화의 차별성을 드러낸 것이었다. 김 교수는 “목조건물이 주를 이루었던 일제 건축문화와 달리 석조건물이 갖는 강인한 의지에서 민족문화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화강암이 풍부한 우리나라의 환경을 고려할 때 지역성에도 걸맞는 선택이었다.

본교의 전신인 보성전문고등학교를 건축한 박동진 건축가도 우리나라 건축 문화에서 미흡했던 석조 건축의 부흥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한반도에는 양질의 화강암이 많은데 건축에 이들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며 우리나라 고유 환경의 장점을 살린 석조 건축을 주장했다. 당시 보성전문학교 공사에 사용된 화강암은 근처 종암동의 채석장에서 채굴되었다는 점도 시사할 점이 많다. 석조 고딕 양식은 ‘지식의 상아탑’인 동시에 ‘민족의 횃불’이 돼 왔던 우리나라 옛 대학들의 신념을 반영한 건축 양식이었던 것이다.

이후 인문사회계 캠퍼스에 많은 건물들이 이 양식을 본 따 성처럼 연이어 지어진 덕분에 호그와트를 본 딴 ‘고그와트’란 재미있는 별칭도 붙었다. 그러나 안 교수는 “이렇게 세쌍둥이, 네쌍둥이 같은 신축건물들이 캠퍼스 통일성엔 좋을지 몰라도 아류(亞流)만 계속 생산할 뿐 건축물의 의미는 희미해진다”며 “옛 건물들은 소중히 보존하고 새로 짓는 건물들에 대해선 시대를 반영한 큰 비전을 가지고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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