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강정마을의 이름 앞에는 ‘제주해군기지’, ‘평화의섬’, ‘유네스코가 지정한 환경보고’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었다. 정치권, 언론, 환경단체 등이 내건 이름표였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확인한 강정마을 주민은 정치인도, 군사전문가도, 환경론자도 아니었다.
1월 15일 강정마을을 방문했다. 강정 땅에 슬그머니 들어온 사람들이 아닌, 평화로웠던 옛 마을을 회상하는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민의 단 한 가지 바람
기자가 방문한 당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시위현장에 나와 있었다. 공사가 진행 중인 구럼비바위 인근에선 ‘강정지킴이’ 회원들이 해군기지 건설중단을 요구하며 3만배를 올리고 있었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이 시작된 후 여러 단체들은 해군기지에 갖가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시위를 주도하고 있던 고권일 제주해군기지건설 반대대책위원장 역시 강정이 이슈화된 후 만화가 생활을 접고 귀향한 상태였다. 그에게 조심스레 해군기지건설에 반대하는 이유를 물었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4·3의 아픔이 남아있는 곳이고 평화의 섬을 지향하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 군부대가 들어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강정이 아닌 제주도의 다른 지역에 해군기지가 들어섰더라도 이렇게 반대 했을 건가요”
“…”
고권일 위원장은 기자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이 외치는 주장은 반대를 위한 이유가 될지언정 강정마을 주민이 함께 공감하는 문제라 보긴 힘들었다. 정작 기자가 만난 강정마을 주민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우린 돈 욕심없어요. 부귀영화를 누리진 못해도 남 부럽지 않게 살왔거든요. 개발도 투자도 필요없으니 그냥 이대로 살게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요”
“부대가 들어서고 군인이 왕래하기 시작하면 사창가와 술집이 들어설텐데, 우리 아이가 그런 환경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아요.”
“저기 바위보이지. 저기서 내가 20년동안 물질을 했어. 이젠 그것도 못하게 됐지만...”
강정에서 만난 주민들의 이야기다. 그들에게 중요한건 ‘한반도 평화’도 ‘붉은발말똥게’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살던 대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정부의 신뢰회복이 우선돼야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마찰을 빚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정책이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데 있었다. 해군기지 유치 당시 강정마을주민 1900여 명중 87명 만이 마을총회에 참석한 점과 여론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중립성 문제는 정부에 대한 지역주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게 만들었다. 이러한 불신은 마을 내에 ‘국방부 관계자가 마을이장과 밥을 먹었다’,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미군이 들어온다’ 등으로 의심을 더하는 말까지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지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으로 정해놓은 해군기지 건설현장에 강제로 진입하기까지 했다. 강정마을을 방문할 당시에도 이미 강동균 마을회장을 포함한 여러 주민들이 검찰조사를 받기위해 제주시 법원에 출두한 상태였다.
“마을이 범죄자 천국이에요. 용역으로 안되니까 법으로 어떻게 해보려는거지”
“서울에서 온 기자라고 하고 한번 들어 가보세요. 저놈들이 우리만 잡는 건지 확인해보게”
지역주민을 설득하지 못한 정부의 일방 행정은 그들의 한 가지 바람마저 변질시켜 버렸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적대감과 무조건적인 저항뿐이었다. 제주해군기지가 필요하다 할지라도, 정부가 계속해서 불통과 강압으로 나온다면 강정마을이 기억하는 평화는 찾아오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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