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전시돼 있는 청와대 세종실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렸다. 대통령 10명의 초상은 박근혜 대통령의 5년을 함께 지켜본다.
‘나라의 얼굴’이었던 사람을 초상화로 남기는 모습은 익숙하다. 오늘과 달리 봉건군주나 절대적 지배자를 우상화했던 과거 인류사에선 더욱 흔한 풍경이었다. 예로부터 초상화는 권력의 정점에서 누렸던 이들의 힘을 한 폭에 담아낸 것이었다.
  

잘난 군주를 위한 잘난 각도
지배자 초상화의 시작은 군주의 ‘옆모습’이다. 고대 로마 동전에 새겨진 황제의 초상화나 고대 이집트의 벽화는 모두 얼굴이 옆을 바라보는 측면관을 취한다. 정석범 한국미술사교육학회 섭외위원은 그 이유로 “고대엔 묘사기법이 발달하지 않아 정면그림으로 이목구비를 표현하기 힘들었다”며 “측면 각도는 얼굴을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고 대상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리기도 좋다”고 설명했다.

고대 이후 지배자의 초상화엔 비스듬한 각도가 빈번히 쓰였다. 이런 구도의 그림을 동양에서는 칠분상 내지 팔분상, 서양에서는 스리 쿼터(three-quarter)라 부른다. 왕의 초상화뿐 아니라 일반 초상화에도 가장 흔히 보인다. 채용신이 그린 영조의 어진(그림1)이 한 예다. 붉은 곤룡포를 두르고 두 손을 모은 공수 자세로 앉아 있는 영조의 모습이 안정감을 준다.

그렇다면 왕의 초상화에 사용되는 특별한 ‘군주각도’가 있는 걸까.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승정원일기>는 왕의 어진엔 정면관 초상화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결론짓고 있다”며 “알현한 신하들을 바라보듯이 왕의 형상이 초상화 앞에 선 이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을 똑바로 응시하는 정면관 초상화는 보는 이에게 위압감을 주는 효과를 가진다. 조선 초대 왕인 태조 어진(그림2)과 앵그르가 그린 나폴레옹의 초상화(그림3)은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의 시선과 함께 압도적인 분위기를 살려냈다.

옷과 소품을 통한 권력 암시
초상화 속 왕이 두르고 있는 옷과 소품은 권력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나폴레옹의 초상화(그림3)는 벨벳 천에 수놓인 금색의 별과 서로마 제국의 샤를마뉴 대제가 들었던 권장을 통해 나폴레옹과 옛 서로마 제국 황제를 동일선상에 놓는다.

갑옷을 입은 기마상은 정복군주의 모습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티치아노가 그린 카를5세의 초상화(그림4)는 가톨릭의 편에 섰던 제국의 종교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그려졌는데, 앞다리를 치켜든 채 도약하려는 말의 모습과 노을빛을 받아 빛나는 갑옷이 용맹한 승리자의 형상을 그려낸다.

문치국가였던 조선시대에도 갑옷을 두른 군주의 모습이 그려졌다. 조인수(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는 “현재 일부 남아있는 철종 어진 또한 군복을 입고 있다”며 “상당수 어진이 소실되어 많은 그림이 남아있진 않지만 조선시대 초기부터 기마상이나 갑옷을 입은 왕의 모습을 그렸다는 기록은 전해내려 온다”고 말했다.

옷과 배경이 그려내는 색상은 왕조 혹은 왕가의 이미지를 대변하기도 한다. 카를 5세의 초상화(그림4). 승리의 이미지와 해가 지는 석양의 풍경은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붉은 노을빛과 말 위에 얹힌 적색 안장은 당시 가톨릭 신앙을 상징한 붉은색을 차용한 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상징색이 파랑이었기에 하늘을 붉게 표현하여 가톨릭의 압승을 더없이 과시했다.

색의 대비는 조선시대 어진에서도 발견된다. 흔히 ‘왕의 옷’하면 떠올리는 붉은 곤룡포 대신 태조 어진(그림2)은 청색 곤룡포를 입고 있다. 이는 ‘청색을 숭상하던 고려시대의 전통을 승계한 조선 초기 왕조의 자주적 특징을 나타낸다’는 해석이 있다. 반면 영조 어진(그림1)는 붉은 곤룡포를 입고 있는데 이는 명나라로부터 하사받은 옷으로, 조선 초기 이후엔 명을 섬겼던 조선 왕조의 모습을 대변해 준다.

나는 만능인이다 : 분장, 위장 혹은 왜곡
불완전한 인간을 완벽한 군주로 만들기 위해선 초상화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다문화국가였던 청의 황제 옹정제의 초상화(그림5, 6, 7)를 보면 △용을 퇴치하는 승려 △호랑이를 물리치는 유럽 귀족 △자연을 벗 삼는 선비 등 황제가 다양한 페르소나를 통해 그려진다. 다양한 출신의 백성에게 다가가기 위해 황제 또한 여러 모습으로 변신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군주는 자신의 모습에서 로마 황제가 연상되도록 메달을 제작했다. 피사넬로가 그린 이탈리아 지방 공국의 군주 레오넬로의 모습과 고대 동전 속 로마 황제의 형상은 언뜻 보기에 비슷하다. 르네상스 군주들 중 상당수는 상업적, 정치적 힘으로 왕 위에 올라 정통성이 없었기에 자신의 이미지를 고대 황제와 동일시해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조선은 완벽한 군주상을 위해 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한다. 왕이 홀로 등장하는 어진이 아닌 기록화나 행차도에서는 아예 왕의 모습을 그리지 않았다. ‘그림을 본 사람이 왕의 그림을 손가락질하거나 왕의 모습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조선시대 왕의 초상화는 다른 나라에 비해 왜곡이 거의 없는 편에 속한다. 조 교수는 “조선의 어진은 현재 시각으로 분류하면 극사실주의 그림”이라며 “태조 어진(그림3)은 수염 한 올 한 올, 얼굴에 있는 사마귀까지 세세하게 그렸다”고 말했다. 타 문화권은 왕의 초상화를 과시 수단으로 활용한 데 비해, 조선시대 어진은 제사나 향배를 위한 의례적인 수단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화풍은 때로 신체적 약점까지 가감 없이 드러낸다. 조 교수는 “철종의 어진을 보면 눈이 사시로 그려져 있는데 실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라면서 “사실에 충실한 조선시대 화풍 덕에 연구자들이 그려진 얼굴을 관상학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가능하고 얼굴에 그려진 흉터를 통해 당시 앓았던 질병을 과학적으로 유추해 낸 적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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